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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명≫, 민주주의의 교사가 아닌 반면(反面)교사일 뿐플라톤의 ≪소크라테스의 변명≫ 읽기 (2)
최용현 | 승인 2015.06.22 09:29

여러분은 앞으로 욕을 듣고 비난을 받을 것이오. 이 나라를 나쁘게 말하려는 인간들로부터 여러분은 지혜로운 소크라테스를 죽였다고 비난받을 것이오……여러분은 나의 죽음을 결정했지만, 내가 죽은 뒤 머지않아 여러분은 징벌을 받을 것이고, 그 징벌은 맹세코 나의 사형보다 훨씬 쓰라린 형벌이 될 것이오

“여러분은 지혜로운 소크라테스를 죽였다고 비난받을 것”

이 글은 소크라테스가 사형선고를 받고 배심원들(특히 사형평결을 한 배심원들)에게 한 말입니다. 어찌되었든 그의 예언은 적중하였습니다. 그의 사후 수많은 정치고전들과 교과서들은, 당시의 불의한 권력과 무지한 배심원들이 자유와 민주주의의 진정한 수호자인 소크라테스를 죽였다며, 그 사례를 통하여 민주주의의 중우성(衆愚性)이나 인민대중의 무지함을 경고합니다.

소크라테스가 자유와 민주주의의 진정한 수호자? 그는 본래 민주주의를 옹호하는 사상가였을까요? 칼 포퍼(Karl Popper)와 같은 학자들은 철두철미한 反민주주의 사상가였던 플라톤과 달리, 소크라테스는 민주주의를 옹호한 사상가였다고 주장합니다. 이들은 플라톤 저서, 특히 그의 ≪국가≫에 화자(話者)로서 등장하여 자유 평등 민주주의를 거부하고 위계질서 전체주의 사상검열 등을 설파하는 소크라테스는, 실제의 소크라테스가 아니고 플라톤 자신의 아바타에 불과하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소크라테스가 명문 귀족 출신이었던 플라톤과 달리 평민 출신이었고, 맨발로 남루한 옷을 입고 저잣거리에서 일반 시민들과 어울리기를 좋아하고, 정치적 사회경제적 지적 엘리트들을 조롱하기를 즐겼고, 자유스런 아테네에서 그 자유를 마음껏 누렸다는 점 이외에 그가 민주주의 사상가였다는 명백한 증거는 어디에도 없습니다. 우리는 2천5백년의 시간을 되돌려 실제 소크라테스가 어떠한 사상을 가졌는지 다시 확인할 순 없습니다. 어찌되었든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국가≫를 포함하여 플라톤의 저서들에 화자로서 등장하는 ‘그 소크라테스’ 뿐입니다.

대부분의 학자들은 실제 소크라테스도 ‘그 소크라테스’와 별반 다르지 않았을 것이고, 그의 사상도 그의 가장 충실한 제자였던 플라톤과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이라고 합니다. 1937년 처음 출간된 이래 가장 많이 번역되고 널리 읽혀져 정치사상 역사에 대한 세계적 기본서라고 할 수 있는 ≪정치사상사≫의 저자인 세이빈(George Sabine)도 “플라톤의 ≪국가≫에 있는 정치원리의 상당부분은 사실은 소크라테스의 것이며, 그것들은 소크라테스로부터 직접 플라톤에 전수된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 소크라테스’는 앞서 보았듯이 최악의 反민주주의 사상가입니다.

▲ 세이빈과 솔슨의 정치사상사 1/2권, 필자가 이 책을 구입하여 읽었던 것이 1987년 대학 1학년때였으니 벌써 30년 가까이 세월이 흘렀습니다. 그만큼 책의 속지가 누렇게 변색되어 있었습니다. 이 2권의 책은 거의 모든 정치사상가들을 막라하다 보니, 분량도 상당하고 이해하기도 어려워 완독까지는 상당한 시간과 인내가 필요할 것입니다.

다만 수많은 정치고전들과 교과서들처럼, 그가 비록 이처럼 근본적으로 反민주주의 사상을 가진 철학자라고 하더라도, ‘그렇지만 그는 자유와 민주주의의 진정한 수호자이기도 하다’라고 평가할 만한, 플라톤의 저서에 등장하는 또 다른 ‘그 소크라테스’도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소크라테스의 변명≫에 등장하는 소크라테스입니다. 그러나 지금부터 보듯, 실제 ≪변명≫이 그렇게 해석 평가될 만한 근거가 될 수 있는지 저는 의문입니다.

≪변명≫, 그를 자유와 민주주의의 수호자로 만든 유일한 기록

스파르타와 전쟁으로 피폐해진 아테네에서 귀족과 反민주주의자들이 2차례 쿠테타를 일으켜 민주정부를 전복하고 과두독재정부를 수립하기도 하였는데, 이 쿠테타 세력 중에 소크라테스의 제자들이나 그의 反민주주의 사상을 지지하는 자들이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민주정부가 회복된 후, 이러한 연유로 反민주 혐의를 받게 된 소크라테스는 법정에서 다음과 같이 변론합니다.

우리 부족이 평의회의 집행부를 맡았을 때(민주정부 시절 때) 여러분은 당시 해전에서 표류자를 구출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10인 군사위원회를 일괄해서 재판에 회부하기로 의결했었소. 그런데 나중에 여러분도 인정하였듯이 이는 위법한 조치였소(당시 범법자의 일괄회부는 위법이었다). 그러나 당시 집행부 위원중 오직 나 혼자만은 그 어떤 위법도 하지 않기 위해 반대 투표를 했소. 당시 위원들이 나를 고발하여 체포하려 했고, 여러분도 그렇게 하라고 아우성 쳤지만, 나는 구속이나 사형이 무서워 옳지 않은 의결을 한 여러분과 한 패가 되느니, 차라리 법과 정의의 편을 들어 그 모든 위협에 맞서야겠다고 생각했소

이번에는 과두정부(쿠테타 정부를 의미)가 수립되고 30인 혁명 위원회가 나를 다른 4명과 함께 불러내어서는 살라미스 사람인 레온을 사형에 처해야 하므로 그를 잡아 오라고 명령하였소. 그러나 그때 나는 죽음은 조금도 두렵지 않지만 부정과 불의는 결코 행하지 않는다는 것을 행동으로 보여주었소. 당시의 지배자들은 그토록 강했지만 나를 위협해서 부정에 끌어들이지는 못했소. 명령받은 다른 4명은 레온을 체포하여 왔지만, 나는 바로 그 길로 집으로 돌아가 버렸소. 만약 그 이후 그 정권이 무너지지 않았다면 아마 나는 그 일로 살해되었을 것이오

소크라테스는 자신의 정의만을 따라 살았으며, 이러한 자신의 정의를 지키고자 오히려 정치나 공적인 일에의 참여를 회피하였고, 우연한 기회에 정치나 공적인 일에 참여하게 되더라도, 민주정부에서건 과두정부에서건 다수 대중의 의사나 권력의 지시에 무조건적으로 따르지 않고, 죽음의 위협 속에서도 자신의 정의를 고수하였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이제 와서 재판을 받아 처벌을 받게 되었다고 하여, 이러한 자신의 삶의 방식을 포기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웅변합니다. 그는 자신의 철학과 철학하기 방법을 앞으로도 계속할 것이며, 비록 그것이 지금은 대다수 시민들에게 혐오감을 주고 증오감을 불러일으킬 수도 있지만, 오히려 이 사회를 위하여 꼭 필요한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물론 그의 이러한 변론마저도 배심원들에게는, 전회에서 말한 그의 주특기인 ‘상대방(배심원) 면박주기’와 ‘자기자랑질’로만 들렸을지도 모릅니다.

▲ 소크타테스.

지금 여러분이 나한테 “소크라테스여! 지금 우리는 고발자의 말을 따르지 않고 그대를 석방한다. 다만 여기에는 조건이 있다. 즉 지금까지 해온 탐구 생활을 하지 말 것, 그리고 지혜를 사랑하고 구하는 일도 하지 말 것, 만일 여전히 그런 짓을 하다가 다시 소환되면 그때는 죽을 것이다”라고 말하고 석방해 준다면, 나는 여러분에 이렇게 말할 것이오. “나는 여러분을 경애하고 있지만, 여러분에게 복종하지 않고 신에게 복종하겠소. 그리고 내 목숨이 붙어 있는 한 내가 할 수 있을 때까지는 결코 지혜를 사랑하고 구하는 일을 그만두지 않을 것이고, 여러분 가운데 언제 누구를 만나더라도 충고하고 내 소신을 밝히는 일을 그만두지 않을 것이오. 그리고 그때의 내 말은 지금까지와 다르지 않을 것이오. 세상의 밝은 사람이여! 당신은 지혜와 무력에 있어서 가장 명성이 높고 위대한 아테네의 시민이면서 단지 많은 돈을 버는 데만 혈안이 되어 있으니 부끄럽지 않은가? 명성과 지위에 신경 쓰면서도 사려나 진리에는 전혀 신경 쓰지 않고, 정신을 훌륭하게 만드는 데는 전혀 마음을 두고 있지 않을뿐더러 이에 대하여 걱정도 하지 않고 있으니 부끄럽지 않은가?”라고 말할 것이오
 
좀 우스꽝스러운 표현이 되겠지만, 나는 신이 이 나라에 보낸 사람 같소. 그것은 마치 혈통 좋은 말이 너무 커서 오히려 보통의 말보다 둔하기에 그 크고 혈통 좋은 말이 늘 눈을 뜨고 있으려면 등에(소나 말에 달라붙어 피를 빨아먹는 곤충) 같은 것이 필요한 것처럼, 신은 나를 그 등에 같은 것으로써 이 나라에 보내지 않았나 생각이 드는 것이오. 즉 나는 여러분의 눈을 뜨게 하기 위해서 한 사람 한 사람 어디든지 따라가서 무릎을 맞대고 온종일 설득하거나 비판하는 일을 잠시도 그만두지 않는 자인 것이오

“나는 신이 아테네를 위하여 보낸 등에 입니다”

비록 소크라테스는 이전부터 자신이 해온 것 그리고 앞으로도 할 것은 자신에게는 ‘지혜를 사랑하고 이를 구하는 일’이었고, 아테네인들에게는 돈 명성 지위보다는 진리 사려 정신을 훌륭하게 하는 것을 추구하라’라는 도덕적 설교였다고 하지만, 그것에는 자신의 反민주주의 사상과 그것의 전파도 당연히 포함되었을 것입니다.

물론 돈 지위 명성 평판을 추구하지 않고 정의와 진리를 추구하라는 그의 말은 너무나도 훌륭한 가르침이고, 권력과 대중의 위협에 직면하더라도 자신의 정의와 진리를 사수하겠다는 그의 자세는 자유민주 사회에서도 너무나 절실히 요구되는 시민정신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흔히들 재판과정에서 소크라테스가 보인 이러한 정의와 진리에 대한 고수와 용기를 현대 민주주의의 기초인 사상․표현의 자유와 관용의 정신을 표현한 것이라고 해석합니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요?

민주주의의 기본 원칙인 사상․표현의 자유와 관용의 정신이란 무엇일까요? 민주 국가에서는 누구든 자유로이 자신만의 이념 윤리 취향을 가질 수 있고, 그 이념 등을 표현하고 전파하고 실현할 수단과 방법을 가질 수 있으며, 그리고 그러한 사상과 표현이 국가가 추구하는 이념과 목표에 어긋나고 다수 대중의 가치관과 정서에 반하더라도, 그것이 공동체나 다른 사람에게 직접적 위해를 가하지 않는 한 허용(관용)되어야 합니다. 이러한 사상․표현의 자유와 관용의 정신은 민주주의의 자유주의적(소극적) 기초를 이룰 뿐만 아니라, 공화주의(참여주의)적 근간이 되기도 합니다. 민주주의는 이렇듯 자유롭고 다양한 이념 윤리 취향을 가진 시민들이 서로를 인정하고 독려하면서 공동체를 구성하는 것이며, 그런 다양함이 오히려 민주주의의 발전에 초석이 되는 것입니다. 자유민주주의의 대하여 사상․표현의 자유와 관용의 정신이 갖는 이러한 의미와 가치에 대하여 가장 잘 설명하고 있는 정치고전은, 나중에 읽어 볼 밀(John Stuart Mill, 1806∼1873)의 ≪자유론≫입니다.

▲ 존 스튜어트 밀의 <<자유론>>과 이사야 벌린의 <<자유론>, 이사야 벌린의 <<자유론>>은 <자유의 두개념> 등 그의 자유에 대한 여러 논문을 모은 것입니다. 밀의 <<자유론>>은 자유에 관한 최고의 에세이로, 벌린의 <자유의 두개념>은 자유에 관한 최고의 논문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당시 아테네는 사상․표현의 자유가 인정되는 민주주의 국가였고, 죄형법정주의 등이 지켜지고 있는 법치 국가였습니다. 비록 소크라테스가 엘리트들과 대중들에게 혐오감을 주는 방식으로 행동하고, 反민주주의 철학을 설파하며 당대의 민주정체를 조롱하고, 재판과정에서조차 반성은커녕 비아냥대며 진지함을 보이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그의 철학, 철학하기 방법, 법정 태도를 그의 자유로써 허용하고 관용하는 것이 민주주의입니다. 당시의 배심원들 나아가 아테네인들이 부족하였던 것은 바로 이러한 민주주의에 대한 이해였습니다.

그렇다면 소크라테스가 법정에서 보인 자신의 정의와 진리에 대한 고수와 용기는, 과연 이러한 민주주의의 기본 원칙인 사상․표현의 자유와 관용의 정신에 근거한 항변이었을까요?

≪변명≫의 소크라테스, 자유와 관용의 정신을 말하는가

당시 이러한 민주주의의 기본 원칙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것은 아테네 민주정권과 아테네의 시민들, 배심원들만이 아니었습니다. 소크라테스 자신도 그러하였습니다. 비록 그가 변론에서 죽음을 불사하고 자신의 사상과 정의를 고수한다고 하고, 또한 그것이 자유민주적 시민의 올바른 자세이기도 하지만, 그것은 민주주의의 기본 원칙인 사상․표현의 자유와 관용의 정신에 대한 이해의 발로는 아닙니다.

≪변명≫에서 그가 옹변하고 있는 것은 자신만의 철학에 대한 고수이지, 모든 철학에 대한 자유의 허용을 의미하는 민주주의에서의 ‘사상과 표현의 자유’는 아닙니다. 또한 그가 옹변하고 있는 것은 자신만의 철학하기에 대한 고집이고 이에 대한 관용의 요구이지, 모든 철학하기에 대한 인정과 인내를 의미하는 민주주의에서의 ‘관용의 정신’은 아닙니다. 사상․표현의 자유와 관용의 정신에는, ‘나의 사상은 절대 진리이기에, 죽음 앞에서도 이를 포기하지 않겠다’라는 소크라테스적 정신보다는 ‘나는 당신의 말에 반대한다. 하지만 당신이 그렇게 말할 수 있는 권리를 위해 나는 죽을 때까지 싸우겠다’는 볼테르(Voltaire, 1694~1778, 근대 프랑스의 계몽사상가)적 정신이 필요한 것입니다.

≪변명≫에서 이러한 모든 사상․표현의 자유와 그에 대한 관용의 정신을 말하는 소크라테스는 없습니다. 그는 사상․표현의 자유와 관용의 정신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였다기 보다는 아예 전무(全無)하였다고 하는 것이 보다 적절할 수도 있습니다. 소크라테스는, 적어도 ≪국가≫에 등장하는 ‘그 소크라테스’는 앞서 보았듯이 오직 자신이 세운 정의만을 유일한 가치로 받아들여 위계적․권위적으로 사회질서를 주조하고, 그에 어긋나는 사상 문화 유희 등을 철저히 억압하고 통제하여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소크라테스의 재판은 수많은 교과서들이 말하는 것처럼, ‘자유를 억압하고, 민주주의에 대하여 무지한 배심원들(혹은 대중) vs 자유와 민주주의의 진정한 수호자로서의 소크라테스’가 등장하는 역사적 무대가 아닙니다. 소크라테스 적어도 ‘그 소크라테스’에게는 민주주의의 근간인 모든 사상․표현의 자유와 그것에 대한 관용의 정신이 본래부터 없었습니다. 오히려 당대의 아테네인들은 적어도 소크라테스의 재판이 있기 전까지는 그런 소크라테스마저 자유와 관용의 이름으로 인정하고 인내 하였습니다. 그러나 패전으로 인한 피폐와 연속된 反민주 쿠테타로 인한 두려움으로 그들의 인내심은 한계에 도달하였습니다. 그들은 더 이상 사상의 자유와 관용의 정신을 발휘하지 못하고 소크라테스를 응징하였습니다. 그들에게 잘못이 있다면 바로 이점일 것입니다.

흔히들 루터(Martin Luther)나 칼뱅(Jean Calvin)이 로마 카톨릭의 독재적 권력과 독점적 권위에 대항하여 새로운 신앙과 신앙방법을 주장하였고 이로서 종교개혁이 이루어졌기에, 루터나 칼뱅의 사상(신앙)과 종교개혁 운동에 종교적 자유와 관용의 정신이 들어 있고, 이로서 자유주의와 민주주의 발전에 기여하였을 것이라도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사상에는 민주주의에서 말하는 종교적 자유와 관용의 정신은 전혀 없습니다. 그들로 인하여 촉발된 종교개혁 운동에도 그러한 자유와 정신이 전혀 없습니다. 그들은 로마 카톨릭에 대하여 자신들의 종교에 대한 자유와 관용을 주장하였지만, 자신들과 다른 신앙을 가진 사람들에게 대하여는 극악의 탄압을 자행한 인물들이었습니다. 민주주의의 근간인 종교적 자유와 관용의 정신은, 그들의 종교적 주장 내지는 운동 때문이 아니라, 역으로 그들이 자행한 극악한 종교적 탄압에 대한 인류의 반성적 성찰의 결과일 뿐입니다.

우리가 ≪변명≫을 통하여 민주주의의 근간인 사상․표현의 자유와 관용의 정신을 배운다면 루터나 칼뱅의 사례처럼, 그것은 소크라테스의 철학이나 변론을 통해서가 아니라, 역사적 무대에 섰던 소크라테스를 포함한 모든 아테네인들의 민주주의에 대한 이해 부족과 인내심 부족에 대한 반성적 성찰을 통해서 일 것입니다. ≪변명≫은 민주주의를 위한 교사가 될 수도 있습니다. 다만 그것이 ‘반면(反面) 교사’로서 읽혀졌을 때만입니다.

≪변명≫은 민주주의의 교사가 아니라 반면(反面) 교사로 읽어야

제가 만난 모든 정치인, 교수, 교사, 평론가, 법조인, 기자 등 우리 사회의 엘리트들은 이러한 민주주의의 근간인 사상․표현의 자유와 관용의 정신을 충분히 알고 있고, 스스로도 이를 진정으로 받아들이고 있다고 이야기 합니다. 과연 그럴까요? 아래 글은 2012년 12월경 제가 지역 신문에 칼럼으로 싣기 위하여 <누가 우리에게 ‘명백하고도 현존하는 위험’을 주는가> 라는 제목으로 송부하였던 글입니다.

아무도 관심이 없는 듯하다. 알고 있는 몇 안 되는 사람들도 별종자의 광기(狂氣)로만 치부한다. 국가보안법위반으로 청주지방법원에서 수차례 재판을 받고 있는 강 아무개 사건이 그렇다. 강 아무개는 인터넷에 북한을 찬양하는 글을 350여 차례 올려 국가보안법을 위반하였다고 구속 기소되었다. 문제는 그 이후다. 그는 위와 같은 범죄로 유죄선고를 받게 되자, 법정에서 ‘북한만세’를 외치는 행위를 반복하였고, 단지 그 행위만으로 3회에 걸쳐 국가보안법위반(‘국가의 존립 안전이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위태롭게 한다는 정을 알면서 반국가단체를 찬양 고무 선전 동조’하였다는 것임)으로 추가 기소되어 징역 8월 2차례, 징역 10월 1차례를 선고받았고, 조만간 또 1건이 추가 기소될 것이라고 한다.

현대사회에서는 누구든지 자신이 믿고자 하는 바를 아무런 제한 없이 믿을 수 있고, 이를 타인에게 자유롭게 말하고 전달할 수 있다. 이를 법적으로 ‘표현의 자유’라고 하고, 이는 현대시민의 기본권중 제1의 기본권이다. 물론 이러한 표현의 자유도 무제한적으로 보장되는 것이 아니라 일정 제한을 받을 수 있다. 이에 대하여 존 스튜어트 밀은 자유주의의 경전으로까지 존중받고 있는 ≪자유론≫에서 “어떤 행동이 다른 개인이나 공공에게 명백하게 해를 끼치거나 해를 가할 위험성이 분명할 때, 그 행동은 자유의 영역에서 벗어나 도덕이나 법률의 적용 대상이 된다……다만 불확정적 또는 추정적 피해를 사회에 끼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이 정도의 불편은 자유라는 좀 더 큰 목적을 위해 감수할 수밖에 없다”라고 하였다. 이러한 밀의 철학은 20세기 초반 미국의 사법부에 의하여 ‘명백하고도 현존하는 위험의 원칙(rule of clear and present danger)’으로 정립되었고, 이는 전세계 문명국가에서 표현의 자유를 제한할 때의 필수적 준수 요건이 되었다. 쉽게 말하면 사상, 언론, 출판 등의 표현의 자유를 제한하기 위해서는 국가나 사회에 미치는 해악이 명백하게 현존해야 하고, 밀의 말처럼 단지 국가나 사회에 위험을 줄 수 있다는 가능성만으로 제한할 수 없다는 것이다.

주민의 최저생계도 책임지지 못하면서도 3대째 세습을 하고 있는 북한체제를 찬양하는 강 아무개의 글은 상식을 갖춘 일반인들에게 불쾌감을 준다. 그리고 그의 법정에서의 북한 만세는 재판관에게 불쾌감을 준다. 그러나 우리에게 혹은 재판관과 방청객에게 불쾌감을 주는 것을 넘어, 과연 그의 북한만세의 외침이, 국가보안법에 규정된 대로, 대한민국의 존립과 자유민주적 질서 자체를 위태롭게 하는가? 그의 법정에서의 외침으로 우리 국가의 존립이 위협을 받고, 재판관이나 방청객들의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신념이 흔들리게 되었는가? 아니 그렇게 될 최소한의 가능성이라도 있는가? 초등학생이라도 이에 대하여 답할 수 있을 것이다. 그의 단순한 만세행위는 법정모독이나 법정소란행위가 될 수 있을지언정, 우리의 국가존립이나 자유민주질서를 손톱만큼도 위태롭게 하진 않는다. 오히려 그럴 자유마저 보장된다는 것이 자유민주주의의 위대함이었지 않던가!

1970년 김 아무개는 철거반원들에게 “김일성 보다 더 한 놈들아”라고 하였다가 반공법위반으로 구속되었고, 아시안게임이 열린 1986년 만취한 한 승객은 버스기사와 요금시비중 “나는 공산당이다. 공산당이 뭐가 나쁘냐”고 외쳤다가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구속되었다. 우리는 그러한 역사를 보며 ‘막걸리 보안법’이라며 표현의 자유를 짓밟은 군사정권과 이에 동조한 당시 사법부를 조롱하였다. 지금의 우리는 3-40년 뒤 그러한 조롱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을까? ‘명백하고도 현존하는 위험’은 강 아무개의 외침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런 정도의 표현마저 용납하지 못하는 우리의 법과 재판에 있는 것이고, 그런 법과 재판이 우리의 자유를 위협함에도 단지 남의 일로 생각하고 이에 무감각한 우리의 이성에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든다.

현대의 우리는 자유와 관용의 정신을 알고 있는가

그러나 이 글은 해당 신문사의 임원진들에 의하여 게재가 거부되었습니다. 아마도 그 임원진들은 우리의 자유와 민주주의를 위하여 강 아무개의 북한만세 행위를 처벌하면 안 된다는 필자의 주장을, 강 아무개의 북한만세 행위를 지지하거나 강 아무개와 마찬가지로 북한을 찬양하는 행위와 같은 것으로만 이해하는 모양입니다.

▲ 재판에서 사형선고를 받고 감옥에 갇힌 채 친구, 제자들과 대화를 나누고 있는 소크라테스.

이제 소크라테스의 오랜 죽마고우인 크리톤과 함께, 사형평결을 받고 감옥에서 그 집행을 기다리는 소크라테스를 만나러 갈 것입니다. 우리는 ≪크리톤≫에서 또 다른 소크라테스를 만날 것입니다. ≪변명≫에서 사상․표현의 자유와 관용의 정신에 대하여 무지한 소크라테스를 만났다면, ≪크리톤≫에서는 그에 더 나아가 이러한 자유와 관용의 정신을 질식시키는 ≪국가≫의 ‘그 소크라테스’ 같은 소크라테스를 만날 것입니다. 소크라테스가 민주주의자였다고 이해하거나 흔히 오독하는 것처럼 ≪변명≫에서의 소크라테스를 자유와 민주주의의 수호자라고 이해한다면, 다음에 읽을 ≪크리톤≫에 등장하는 이런 소크라테스를 절대 이해할 수 없을 것입니다.

최용현  choiyh68@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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