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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스토텔레스 몸속에는 플라톤의 피가 흐른다아리스토텔레스의 ≪정치학≫ 읽기 (1)
최용현 | 승인 2015.07.20 09:25

아리스토텔레스는 플라톤보다 40여년 늦은 BC 384년 마케도니아의 영향권에 있던 스타기로스라는 작은 도시의 귀족 집안에서 태어났습니다. 18세에 아테네로 이주하여 플라톤이 세운 ‘아카데미’에서 플라톤이 사망할 때까지 20년을 수학하였습니다. 당시 아테네는 펠레폰네소스 전쟁에서 스파르타에 패배하여 비록 정치적 경제적 패권은 잃었지만, 여전히 민주정체를 유지하고 있었고, 문화와 교육의 중심지의 역할을 유지하고 있었습니다.

플라톤 사후에 대학 내 그리고 아테네 시민들 사이에서 反마케도니아 감정이 심해지자 고향으로 돌아가, 마케도니아를 통치하던 필리포스 2세의 초청으로 그의 아들인 알렉산드로스(영어로는 알렉산더, BC 356∼323) 왕자의 가정교사 노릇을 하기도 합니다. 나중에 알렉산드로스가 그리스를 점령하자, 그는 아테네로 돌아와 ‘리케움(Lyceum)’이라는 대학을 설립하여 강의와 연구에 전념하다가, BC 323년 알렉산드로스가 죽은 후 아테네에서 反마케도니아 소요와 민주파들의 봉기가 발생하자 이를 피해 망명하였고 그 이듬해에 62세의 나이로 숨을 거뒀습니다.

알렉산드로스는 최초로 세계제국을 건설한 지배자로 흔히 대왕(the great)으로 불리지만, 민주주의 역사의 입장에서 보면 그는 민주주의의 파괴자임이 명백합니다. 그는 아테네를 점령후 민주정체를 해체하고 일정 재산을 가진 자만 정치적 권리를 갖는 과두(寡頭)체제의 괴뢰정부를 세웠습니다. 그의 사후 아테네는 민주파의 봉기와 이에 대한 진압이 반복되는 격변이 계속 일어났고, 그리고 일시적으로 민주정권을 회복하기도 하지만, 종국에는 기원전 2세기경 로마군이 침입하면서 아테네 민주주의 역사는 종말을 고하고 민주주의라는 말도 사라지게 됩니다.

▲ 알렉산드로스 왕자를 가르치고 있는 아리스토텔레스, 프랑스 화가 Laplante의 작품.

아테네 민주정체는 붕괴는 그 특유의 중우성(衆愚性) 때문 ?

이와 관련하여, 대부분의 정치학자들과 우리의 교과서들은 마치 아테네 민주정체가 펠레폰네소스 전쟁이후 그 특유의 중우성(衆愚性)으로부터 비롯된 분쟁과 혼란으로 멸망한 양 은유하지만, 이는 전혀 사실과 다릅니다. 아테네 민주정체의 멸망은 전 그리스를 정복한 마케도니아와 로마군이라는 외부 침입에 의한 것입니다. 아테네보다 강력한 전제국가였던 스파르타와 페르시아조차도 그러한 운명에서 벗어날 수 없었습니다. 또한 그들의 곡해처럼 아테네 내부의 분쟁과 혼란이 있었다면, 그것은 소크라테스 플라톤과 같은 反민주주의를 신봉하는 사상가들의 선동과 이들을 따르는 정략가들의 끈임 없는 음모가 그 근원이었다고 할 것입니다.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교사이고 위대한 대왕이었던 아리스토텔레스와 알렉산드로스는 이처럼 스승과 제자 관계였지만, 알렉산드로스에게서 아리스토텔레스의 영향은 전혀 찾을 수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치철학은 알렉산드로스라는 인물로 상징되는 폴리스 체제의 붕괴, 폴리스 외부 세계의 등장, 세계 제국의 성립, 동서양 융합문화의 발흥이라는 세계사적 전환과 전혀 무관합니다. 대 학자였던 아리스토텔레스가 그러한 세계사적 전환의 순간을 전혀 인식하고 있지 않았다는 사실이 오히려 놀랍습니다.

그의 정치철학은 고전적입니다. 그는 플라톤의 문제의식을 되풀이하고 있을 뿐입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그의 스승인 플라톤으로부터 받은 영향은, 플라톤이 그의 스승인 소크라테스로부터 받은 것 이상으로 지대합니다. 플라톤의 거의 모든 저서에 그의 스승이 화자(話者)로 등장하는 것처럼,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치학≫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인물이 플라톤입니다. 이것은 단지 비유나 은유가 아닙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세계를 보는 눈, 이상 국가, 그것에대한 현실적 대안, 학문적 분석 도구 등은 모두 플라톤에게서 빌리거나 혹은 그에 기반한 것입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플라톤의 각주(脚註)로부터 시작합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플라톤의 각주(脚註)

흔히들 아리스토텔레스를 ‘현실주의자’라고 합니다. 그가 외국의 많은 헌법 사례를 연구 검토하여 비교하고, 현실의 민주정체를 변혁할 수 있는 가능한 실천적 방법을 제시하고 있다는 측면에서 그렇다고 합니다. 그렇지만 그가 현실주의자라는 것은 ‘플라톤과 비교’해서 그렇다는 것일 뿐이고, 2,500년 전의 그를 지금 시대와 같은 의미에서의 현실주의자라고 할 수도 없습니다. 지금의 시각에서 보면 플라톤만큼 그도 여전히 ‘이상주의자’입니다. 오늘은 그런 ‘이상주의자’로서의 그를 살펴볼 것입니다.

이상주의자 아리스토텔레스는 스승의 계급적․위계적 세계관을 그대로 물려받았습니다. 그도 사람들은 저마다 다른 본성(소질과 본성)을 타고나고, 그 본성의 차이는 너무 크고 쉽게 변화되지도 않는다고 보았고, 그에 따라 사회적 차별과 위계를 두는 것이 정의롭다고 주장하였습니다.

서로 상대방 없이 존재할 수 없는 것들은 한 쌍으로 결합해야 한다……타고난 치자(治者)와 피치자(被治者)도 자기 보존을 위해 결합해야 한다. 지성에 의해 앞을 내다볼 수 있는 자는 타고난 치자이자 주인이지만, 남이 계획한 것을 체력으로 실현할 뿐인 자는 피치자요 타고난 노예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주인과 노예는 상호보완적이어서 이해관계가 일치한다.

다른 사람들의 견해에 따르면 주인이 노예를 지배하는 것은 자연에 배치되는 것으로, 노예와 자유민의 차이는 관행에 의한 것이고, 본성상으로는 이들 사이에 아무 차이가 없다고 한다. 따라서 이들의 관계는 힘에 의한 것이어서 정당하지 못하다는 것이다……(그러나) 몸과 혼이 다르고, 들짐승이 인간과 다른 것처럼……어떤 사람들의 몸이 남들보다 훌륭하다면, 열등한 자는 마땅히 그들의 노예가 되어야 한다는데 모두가 동의할 것이다. 그리고 몸에 그런 차이가 있다는 것이 사실인데, 혼(魂)에도 그런 차이가 있다는 것이 당연하지 않은가!……이렇듯 어떤 사람들은 본성적으로 자유민이고, 어떤 사람들은 노예인데, 후자는 노예제도가 유익하고 정당함이 분명하다.

▲ 플라톤(왼쪽)과 아리스토텔레스.

“타고난 노예들이 있으며, 이들은 오히려 노예의 삶이 이롭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주인이 노예를 지배하는 것은 자연에 배치되는 것으로, 노예와 자유민의 차이는 관행에 의한 것이고, 본성상으로는 이들 사이에 아무 차이가 없다. 따라서 이들의 관계는 힘에 의한 것이어서 정당하지 못하다”는 틀린 주장을 하는 사람들은 바로 고대 아테네의 소피스트와 아테네인들의 민주의식을 지칭한다고 할 것입니다. 그도 플라톤과 마찬가지로 당대의 자유적․평등적 세계관을 명백히 거부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아리스토텔레스와 플라톤의 정치철학의 차이는 무엇일까요? 플라톤은 자신의 계급적․위계적 세계관을 정치에도 그대로 적용하고 있습니다. 그는 ≪국가≫에서 법이나 시민의 통제를 전혀 받지 않는 전지전능한 통치계급과 이에 무조건 복종하는 신민(臣民)체제를 구상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독점적인 정치계급을 생성하고 그들에게 절대적인 지위와 권한을 부여하는 근거로 플라톤이 제시한 것은, 바로 그들의 ‘탁월함’(aretē, 그리스어 아르테는 위대한 교사들에게 핵심적인 키워드이지만, 지금 우리가 이해하기에는 너무 어려운 단어입니다. 아르테는 통상 탁월성으로 번역되나 미덕 덕성 자질 등으로 번역되기도 하고, 영어로는 distinction exellence goodness 등으로 번역되고 있습니다)입니다. 정치는 사회의 여러 분야와 직업 중 최고의 지식과 윤리가 요구되는데, 그런 정치는 그것에 적합한 지적․윤리적 탁월함을 갖고 태어나고, 그것에 필요한 고도의 교육과 훈련을 받는 소수의 엘리트들이 전담하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정치, 정치인, 정치적 지식에서의 ‘탁월성’의 요청은 아리스토텔레스도 공유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는 플라톤이 ≪국가≫에서 제시하는, 탁월성의 유무(有無)를 기준으로 인간을 양분하여 철저한 지배와 복종관계를 구성하는 플라톤의 이상국가는, 극단의 통일체로 오히려 그것은 “국가를 파괴”하는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국가 전체가 가능한 한 하나의 통일체가 되는 것이 최선이다”라는 소크라테스의 가정……그러나 분명 국가는 계속해서 점점 더 하나의 통일체가 되어 가면 결국 국가이기를 그만두게 될 것이다. 국가는 본성적으로 하나의 복합체(複合體)다. 따라서 국가는 복합체에서 점점 더 통일체가 되어갈수록 가정이 되고, 가정 대신 개인이 될 것이다……따라서 국가를 그런 통일체로 만들 수 있다 하더라도 그렇게 해서는 안된다. 그럴 경우 국가는 파괴되고 말 것이기 때문이다. 국가는 다수의 사람들뿐만 아니라 여러 종류의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국가 또는 정치는 탁월함이 요청되지만 다양함도 배제할 수 없다고 합니다. 그러면, 그는 자신의 기본 원칙인 ‘탁월성’ 속에 어떻게 ‘여러 종류의 다수의 사람들’이나 ‘다양성’을 수용할 수 있을까요? 의외로 그 방법은 간단합니다.

그의 차이점, ‘탁월성의 재구성’

치자와 피치자는 둘 다 탁월함을 지니되 그 종류가 다르다. 그것은 본성적 피치자들 사이에서도 부류에 따라 탁월함의 종류가 다른 것과 같다. 이는 혼의 상태를 보면 알 수 있다. 혼에는 본성적으로 지배적인 부분과 피지배적인 부분이 있고, 이들의 탁월함은 서로 다른데, 그 중 하나는 이성적인 부분의 것이고, 다른 하나는 비이성적인 부분의 것이 때문이다……모두들 탁월함을 지니되, 똑 같은 정도는 아니고, 제 기능을 수행하는데 필요한 만큼만 지니는 것이다

치자 고유의 탁월함은 선견지명(pronesis)뿐이다. 다른 탁월함은 치자와 피치자 모두에게 필요한 것 같다. 대신 피치자의 탁월함은 선견지명이 아니라 올바른 의견(doxa alethes)일 것이다.

그것은 ‘탁월성’을 ‘있고 없음’으로 양자택일적으로 구성하는 것이 아니라, ‘많고 적음’의 문제로 재구성하는 것입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이렇게 탁월성을 재구성함으로써 다음과 같이 자신의 독자적인 정치철학을 구성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첫째, 지배와 복종의 관계만 있는 플라톤의 ≪국가≫에 없던, 서로 동등한 관계에 있는 사람들(자유민)을 정치의 무대에 등장시킬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하층민과 빈민도 비록 조야하고 졸렬하다고 할 정도일지라도 어느 정도의 탁월함을 지니게 되었기에 그들도 최소한 그리고 최하위일지라도 공동체내에서 일정한 정치적 지위․권한․권리․이익을 가질 철학적 근거를 갖게 되었습니다. 이는 신민과 법의 통제를 전혀 받지 않는 플라톤적 철인정치에서 벗어나 통치자가 ‘시민’과 ‘법’에 의한 제약과 통제를 받는 민주적, 입헌적 정치로 나아갈 여지를 만들었다는 의미입니다.   

둘째, 탁월성을 ‘많고 적음’의 문제로 재구성함으로써 그 많고 적음에 ‘비례하여’ 각자 혹은 각 계급을 차별화하고 서열화하는 것이 가능하게 되었습니다. 결국 그것은 역으로(첫째 의미와 정반대로) 反민주적 정치기획을 가능케 하는 것이었습니다.

주인의 지배와 정치가의 지배는 서로 다르며, 어떤 사람들이 말하듯 모든 종류의 지배가 서로 같은 것이 아님은 분명하다. 정치가는 타고난 자유민을, 주인은 타고난 노예들을 지배하기 때문이다

인간은 완전 했을 때는 가장 훌륭한 동물이지만, 법률과 정의에서 이탈 했을 때는 가장 사악한 동물이다……올바르게 제정된 법이 최고 권력을 가져야 하고, 통치자는 한 명이든 여러 명이든 모든 경우에 보편타당한 규정을 만들기 어렵기 때문에 법이 정확한 지침을 제공할 수 없는 업무들만 조정해야 한다……법조문에 얽매인 정체는 최선의 정체가 아님이 분명하다. 하지만 치자들은 분명 보편적인 원칙도 갖고 있어야 한다. 감정에서 자유로운 것이 감정을 타고 나는 것보다 나은데, 법은 감정이 없는 반면 인간의 마음은 언제나 감정에 휘둘리기 마련이다

국가 공동체가 존재하는 것은 모여 살기 위해서가 아니라 훌륭하게 활동하기 위해서라는 것이 우리의 결론이다. 따라서 그런 공동체에 가장 많이 기여하는 자가 자유와 신분에서는 같거나 더 우월하지만 정치적 탁월함에서는 더 열등한 자들보다, 또는 부에서는 더 우월하지만 탁월함에서는 뒤처지는 자들보다 국가에서 더 큰 몫을 차지하는 것이다. 

‘마지못한’ 민주주의와 자유민의 수용

이렇듯 아리스토텔레스의 탁월성의 재구성은 민주주의를 수용하지만 그것을 反민주주의적으로 재주조할 여지를 남겨두었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비록 당대 아테네의 민주정체와 자유민이라는 현실적 요청을 수용하였지만, 그의 심저에는 여전히 민주주의와 민중에 대한 혐오가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그는 이러한 민주성과 대중성의 ‘마지못한’ 수용을 이렇게 고백하고 있습니다.

자유민 또는 시민 대중은 어떤 업무에서 최고 권력을 가져야 하는가?……이들은 부자도 아니고 탁월함에 근거해 무엇을 요구할 처지도 못 되는 자들이다. 이들이 최고 공직에 참여하는 것은 위험하다. 이들의 불의한 기준은 필연적으로 불의를 저지르게 하고, 이들의 어리석음은 실수를 저지르게 할테니 말이다. 그러나 이들이 참여하지 못하고 배제되는 것도 위험하기는 마찬가지다. 많은 빈민이 공직에서 배제되는 국가는 필연적으로 적(敵)들로 가득찰 것이기 때문이다.

민주성과 대중성의 ‘마지못한’ 수용? 저는 이것이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치학≫ 읽기에서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는 ≪정치학≫에서 모든 인간의 정치성(“인간은 정치적 동물이다”)을 주장하고, 정치적 참여와 행위를 통한 행복을 옹호하고, 그들 모두에 의한 결정(집단 지성)의 훌륭함을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러면서도 그는 항상 그 뒤에 그에 대한 회의, 제약, 한계를 덧붙이고 있습니다. 그것이 ≪정치학≫ 읽는 많은 독자들에게 혼란을 주고 있습니다.

여기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는 민주주의와 민중에 대한 혐오감이 얼마나 강했는지, 자신의 탁월성에 대한 본래의 주장(‘탁월함은 종류와 수준이 다를 수 있지만, 모든 인간이 갖고 있다’)에서 수시로 벗어나기도 합니다. 그는 스승인 플라톤의 눈뿐만 아니라 가슴마저 공유하고 있었습니다.

▲ 아고라(agora) 유적, 고대 아테네의 아고라에는 공공시설, 재판소, 공연장 및 상업시설 등이 있었다.

플라톤의 가슴마저 공유한 원초적 反민주주의자

직공(요즘으로 치면 자영업자에 해당)도 시민에 포함되어야 하는가? 최선의 국가라면 직공을 시민으로 만들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직공을 시민으로 받아들인 국가라면 우리가 앞서 말한 시민의 탁월함은 모든 시민이 다 가질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자유민으로 살아가는데 필요한 노동에서 해방된 자들만이 가질 수 있다……직공과 날품팔이꾼(요즘으로 치면 노동자에 해당)은 어떤 정체에는 필연적으로 시민에 포함될 수밖에 없지만, 다른 정체 이를테면 탁월함과 가치에 따라 공직이 배분되는 이른바 귀족정체에서는 시민에 포함될 수 없다. 직공이나 품팔이꾼의 삶을 사는 사람은 탁월함을 발휘할 수 없기 때문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농민’의 정치적 시민으로서의 자격에 대하여는 상인이나 직공, 날품팔이꾼에 대하여 보다는 우호적이었으나, 그 이유는 역설적이게도(정치적 참여를 통한 행복추구를 강조하는 자신의 주장과 전혀 상반되게) 농민이 그들보다는 ‘정치적이지 않다’는 그 자신의 안도감 때문입니다.

으뜸 가는 민중은 농민이다……그래서 대중이 농업과 목축으로 살아가는 곳에서는 민주정체를 구성하는데 어려움이 없다. 가진 재산이 많지 않은 그들은 여가가 없어 민회에 자주 참석하지 못할 뿐 아니라, 생필품이 모자라 항상 생업에 종사하며 남의 것을 탐내지 않기 때문이다. 실제로 공직에서 큰 이득을 기대할 수 없는 한 그들은 정치를 하거나 공직에 취임하기보다는 일하기를 더 좋아한다……이런 유형의 민주정체가 최선이라는 것은 명백하며 그 이유가 무엇인지도 명백하다……그밖의 다른 유형의 민주정체를 구성하는 대중은 거의 전부 이들보다 훨씬 질이 떨어진다. 그들의 생활방식은 열등하며, 직공과 장사꾼과 날품팔이꾼들이 하는 일치고 탁월함이 필요한 것은 한 가지도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 족속들은 늘 장터와 도심을 배회하는 까닭에 모두들 민회에 참가할 만반의 준비가 되어 있다

그에게 생산과 노동에 종사하는 자유민(농민, 상인, 직공, 날품팔이꾼 등)이란 플라톤이 말하는 ‘신이 놋쇠나 철로 만든 인간’으로, 플라톤과 마찬가지로 아리스토텔레스도 자신이 구상하는 이상국가에서도 이들은 필요한 존재이긴 하지만, 그들은 정치적 탁월성을 갖출 능력도 여유도 없기에 정치에서 배제되어야 한다고 결론 짓습니다. 그것의 결과는 너무나 플라톤적입니다!!!

그 구성원이 특정 규범에 따라 상대적으로 정의로운 것이 아니라, 절대적으로 정의로운 이상적 정체를 가진 국가에서는 시민들은 분명 직공이나 상인의 삶을 살아서는 안된다. 그런 삶은 천하고 탁월함에 반하기 때문이다. 시민이 되어야 할 사람들은 농사를 지어서도 안된다. 탁월함의 계발을 위해서도 정치활동을 위해서도 여가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국가에는 전사들과 유일한 일에 관해 심의하고 정의에 관해 판결을 내리는 자들이 있는데, 이들이야말로 그 무엇보다도 국가의 부분들이다……직공 집단은 국가에 속하지 않으며, 탁월함을 창출하지 못하는 다른 집단도 마찬가지이다. 이것은 이상국가의 원칙에서 나온 결론이다

▲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치학>>.

플라톤의 이상마저 공유하다

이처럼 이상주의자로서의 아리스토텔레스는 비록 민주성과 대중성을 일정 정도 수용하고 있지만 그 근저에서는 反민주적인 플라톤의 정치적 이상을 공유하고 있습니다. 둘의 정치적 이상에서 차이가 있다면 아리스토텔레스가 플라톤의 극단의 조치(재산공유와 처자공유 제도)만은 반대하고 있다는 점뿐입니다. 그것만큼 이상주의자 아리스토텔레스는 현실적이었습니다.

이제 이상적 국가를 모색하는 이상주의자 아리스토텔레스가 아니라 현실적 대안을 모색하는 현실주의자 아리스토텔레스를 만나러 갈 것입니다. 자신의 이상 속에서 민주주의와 화해를 도모하려한 아리스토텔레스는, 현실 속에서도 그러한 화해를 도모합니다. 전자의 화해의 수단이 ‘탁월성의 재구성’이었다면, 후자의 화해의 수단은 ‘과두정과 민주정의 혼합’입니다.

흔히들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치철학에서 이상과 현실은 서로 조화되지 못한 채 병존하고 있을 뿐이라고 하는데, 제가 보기에는 그렇지 않습니다. 그의 ‘과두정과 민주정의 혼합’이라는 현실적 대안은 그 자신의 ‘탁월성의 재구성’에 기반한 이상국가의 연장선상에 있습니다. 플라톤이 이상주의에 입각하여 서술한 ≪국가≫와 현실주의에 입각하여 서술한 ≪정치가≫, ≪법률≫을, 아리스토텔레스는 ≪정치학≫이라는 한권의 책속에 담고 있는 것처럼 말입니다.

최용현  choiyh68@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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