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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구영신<176>
김영회 | 승인 2019.12.20 11:16

송구영신

―2019년의 해가 집니다.
과거로 떠나보내는 아쉬움과
새해의 기다림이 겹치는 시간.
겨울이 오면 봄도 머지않으리…
훠이 훠이, 모두 모두 날라가거라―

한해가 저물어 지난 일 년을 되돌아보는 글을 쓸 때면 어느 해이건 어김없이 인용하는 단어가 있습니다. ‘다사다난’(多事多難). 지난 한 해 동안 국가, 사회적으로 많은 사건들이 있었고 개인적으로도 어려움이 많았다는 것을 가장 명료하게 표현하는 네 글자입니다.

아닌 게 아니라 우리는 2019년 올해도 좌고우면 할 겨를도 없이 분류(奔流)처럼 앞만 보고 숨 가쁘게 달려 왔습니다. 흐르는 강물이 뒤 돌아 볼 겨를이 있으랴 마는 이제 한해를 마감하는 이 엄중한 시간에 잠시나마 뒤를 돌아 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올 해는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을 계기로 해빙 무드를 타고 잘나가는듯하던 남북 관계가 다시 원점으로 되돌아 간 한해였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평양 능라도 경기장에서 15만 군중에게 극적인 연설을 하고 백두산 천지에서 남북 정상이 팔짱을 끼고 함께 웃던 장면이 무색하게도 남북 관계는 북미 관계의 경색과 함께 다시 과거로 돌아갔습니다.

베트남 하노이 북·미회담의 결렬, 조국 법무장관 임명파동, 여당과 검찰의 갈등, 대법원의 징용 배상 판결에 따른 일본의 경제 보복,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을 둘러 싼 여야의 대치, 33년 만에 실체가 드러난 경기도 화성의 연쇄 살인 사건 진상고백, 헝가리 다뉴브강의 유람선 전복 사건, 강원도 강릉지방의 초대형 산불 등 큰 사건이 한해 내내 잇달았습니다. 사법농단에서 비롯된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구속, 연예계의 추악한 스캔들을 낱낱이 보여준 버닝썬 사건 등이 2019년을 얼룩지게 했습니다.

좋은 일도 있었습니다.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이 프랑스 칸 영화제에서 최고상인 황금종려상을 받는 쾌거를 이루었고 7인조 보이그룹 방탄소년단(BTS)이 아시아를 넘어 미주, 유럽대륙을 휩쓰는 선풍을 일으켜 국위를 선양했습니다. 칭찬이 아깝지 않습니다.

2018년 4월 판문점의 도보다리에 마주 앉아 남북 정상이 밀담을 나누고, 그리고 백두산 정상에 올라 함께 두 팔을 낄 때만 해도 “통일은 먼 곳에 있는 것이 아니구나”라는 생각을 갖게 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착각이었습니다. 한반도의 통일은 남과 북의 의지대로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 그것을 다시 한 번 깨닫게 했습니다. 미국의 의사가 중요했던 것입니다.

북한은 다시 초대형 방사포와 탄도 미사일을 잇달아 쏘아 올리며 “미국 눈치만 보지 말고 줏대 있게 행동하라”고 남쪽을 향해 윽박질렀습니다.

올 해는 무엇보다 먼저 사회 갈등을 얘기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의 법무장관 임명을 둘러싸고 빚어진 보수, 진보진영간의 갈등은 국민을 광화문과 서초동으로 갈라놓았습니다. 전국에서 모여든 수십만의 시위 참가자들의 진영 대결은 마치 1948년 정부수립 전후 빚어졌던 해방공간의 좌우 대결을 방불 할 정도로 일촉즉발의 위기감을 불러왔습니다.

5월 제주도에서 전 남편을 살해해 시신을 훼손해 유기한 고유정(36)사건은 온 국민의 치를 떨게 했습니다. 이 사건의 범행 수법은 기자들이 차마 기사로 쓸 수 없을 정도로 사체 훼손이 잔인해 과연 인간이 얼마나 더 악독할 수 있는 가를 보여준 희대의 비극이었습니다.

“2019년이여, 안녕!” 한 해를 마감하는 긴 행렬이 해 지는 갯벌을 수놓고 있다. 다큐멘터리 사진작가 최용백씨 작품 ‘송도, 갯벌의 기억’. / NEWSIS

6월 헝가리 부다페스트 다뉴브강에서 한국인 관광객 33명이 탄 유람선이 전복돼 25명이 숨지고 1명이 실종된 사고역시 국민들을 안타깝게 했습니다.

7월 경기도 파주에서 처음 발견된 아프리카 돼지열병(ASF)으로 홍역을 치렀습니다. 구체적인 감염경로와 전파 원인도 확인되지 않아 전국의 양돈 농가를 공포에 빠뜨렸습니다. 이산화탄소로 질식 시킨 뒤 땅에 묻은 돼지는 15만 4548마리나 됩니다. 1920년대 아프리카에서 시작된 돼지 열병은 치사율 100%의 무서운 전염병이지만 사람에게는 전염되지 않습니다. 현재 국내 사육 돼지 개체 수는 1,171만3,000마리입니다.

1986년부터 91년까지 경기도 화성 일대를 공포로 몰아넣었던 연쇄살인 사건의 진범인 이춘재(56)가 누적 범죄를 자백함으로서 영구 미제사건으로 남을 뻔했던 범행 전모가 밝혀졌습니다. 5년 동안 14명의 무고한 여성을 살해한 이춘재는 무기징역을 선고 받고 복역 중인데 그가 죽인 8번째 희생자인 여중생의 범인으로 몰려 20년간 옥살이를 한 윤모(52)씨의 억울한 사정이 드러나 세상을 놀라게 했습니다. 수사기관의 어처구니없는 실수가 어떻게 한 인간을 망쳐 놓는가를 여실히 보여준 분노할 사건입니다.

대법원의 일제 강제징용 재판 판결에 불만을 품은 일본 정부의 무역규제로 발단된 한·일 간의 갈등은 그러잖아도 과거사 문제로 분노를 가라앉히지 못하는 국민감정에 불을 댕겼습니다. 일본의 무역 보복은 곧 일본상품 불매운동으로 번져 두 나라 관계가 더욱 험악해 지는 사태를 초래했습니다.

그러나 뭐니, 뭐니 해도 백년하청으로 바람 잘 날 없이 이전투구를 벌인 정치권은 끝없는 당쟁을 되풀이 해 일 년 내내 국민들을 짜증나게 했습니다. 거리 삭발에 이어 단식 투쟁을 마다 않고 “죽음으로 싸우겠다”는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의 결연한 선언은 아무리 정치가 좋은 것이라 해도 국민들을 슬프게 만들었습니다.

모두가 힘겹게 보낸 한해, 우리는 앞만 보고 있는 힘을 다해 열심히 뛰었습니다. 평탄한 길 보다는 험한 길이 많았고 내리막길 보다는 오르막길이 더 많았습니다.

하지만 현실이 어렵다하여 앉아 있을 수만은 없습니다. 낭만주의 시인 셸리(영국·1792~1822)는 그의 시 ‘서풍의 노래’에서 “겨울이 오면 봄도 멀지 않으리”라고 노래했습니다. 전 세계인들이 애송(愛誦)하는 이 한 줄의 시구(詩句)야 말로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도 ‘희망가’가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제 슬펐던 일 괴로웠던 일, 훠이~훠이 바람에 날려 보내고 늘 그랬던 것처럼 실낱같으나마 다시 희망을 가슴에 안고 새해를 맞이해야 하겠습니다. 밤이 가면 아침은 오고 태양은 변함없이 동녘하늘에 다시 떠오를 것입니다. 2020년 새해는 분명 올해 보다 낳아질 것입니다. 한 해 동안 수고하셨습니다.

한국천문우주연구원에 따르면 2019년 마지막 일몰은 31일 17시 40분, 전남 신안군 가거도 에서 볼 수 있다고 합니다.

김영회  yhk93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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