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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연 효자비(慶延 孝子碑) 및 묘소(墓所)
황경수 | 승인 2020.01.13 13:30

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남일면 효촌리 248-1, 지북동 산32-3번지에 위치하고 있는 경연 효자비(慶延 孝子碑) 및 묘소(墓所)는 2016년 3월 18일 청주시 향토유적 제33호로 지정되었다.

효자비는 1748년(성종9)에 사재주부(司宰主溥)의 벼슬이 내려졌고 이산현감(泥山縣監)에 오른 청주인(淸州人) 남계(南溪) 경연(慶延, ?~?)의 효성이 조정에까지 알려져 1686년(숙종12)에 세운 비석이다. 경연은 그의 아버지가 오랫동안 병석에 누워있자 한 겨울에 얼음을 깨고 잉어를 잡아 아버지의 입맛을 돋우는가 하면 엄동설한에 고사리를 캐다 드리는 등 극진히 간호하였다고 전해진다.

효자비 앞면에는 ‘효자현감경연지리(孝子縣監慶延之里)’, 뒷면에는 ‘자대유호미군사재야국채야사(字大有號微君事在國菜野史)’, 측면에는 ‘숭정기원후병인삼월일립(崇禎紀元後丙寅三月日立)’이라 새겨져 있다. 이 비석이 세워진 비각은 1957년에 다시 세운 건물로 정면 1칸, 측면 1칸 겹처마 팔작지붕의 목조 기와집으로, 시멘트와 자연석을 이용해 비각의 하부 담장을 만들었으며 돌로 만든 팔각기둥 위에 나무기둥을 세웠다. 또한, 비각의 상부는 홍살로 막아 비석을 보호하고 있다.

비각 옆에는 효촌 마을의 유래비가 서 있어 마을에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를 자세히 전하고 있다.

*묘소(墓所)는 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지북동 산32-3번지에 위치하고 있다.

*경연(慶延, ?~?)은 조선 전기의 효자이다. 본관은 청주(淸州)이며, 자는 대유(大有), 호는 남계(南溪)이다. 정렬공(貞烈公) 경복흥(慶復興)의 7세손이며 좌랑(佐郞) 경신직(慶臣直)의 아들이다.

학식이 고명하고 만고의 효자로 널리 알려졌다. 청주시 상당구 남일면 모산(茅山)에서 살았다. 조선 세조 임금 때에 조정(朝廷)에서 불렀으나 출사(出仕)하지 않았다. 아버지가 병석에 눕자 겨울에 얼음을 깨고 잉어를 잡아 병을 고친 일이 있다. 부모상을 당하여 묘소 앞에 여막(廬幕)을 짓고 6년간 죽을 먹고 소찬을 씹어 예를 다하며, 제사를 받들기를 가례대로 하고 아내와 함께 손수 제사자리를 장만하니, 이웃이 모두 교화되었다.

1478년(성종9) 조정에서 불러 사재주부(司宰主簿)에 임명하였다. 얼마 후에 이산현감(尼山縣監)으로 나가니 관원과 백성들이 모두 존경하고 외애(畏愛)하였다. 선생이 살고 있었던 이웃에 양수척(楊水尺)이란 사람이 있었다. 양수척은 평소에 부모를 잘 섬기지 않았는데, 선생의 효에 감화되어 뒤에 효자가 되었다. 선생에게 감화되어 효자가 된 양수척을 기리기 위해 세운 효자비가 지금도 청주시 상당구 운동동 비선 마을 입구에 전하고 있다.

선생이 죽으니 고을 사람들이 장사지낼 물품을 보내왔는데 그 아내가 말하기를 ‘어찌 남편의 청덕(淸德)에 거리낄 일을 하겠는가?’ 하고 받지 않았다.

중종 때 청백리에 녹선(錄選) 되었다. 그가 여러 번 조정에 소징(召徵)당하므로 징군(徵君)이라 칭하였다. 그가 살았던 곳을 효촌(孝村)이라 부르고, 청주시 상당구 남일면 효촌리에 우암(尤庵) 송시열(宋時烈)이 지은 효자비와 정문(旌門)이 남아 있다. 청주 신항서원(莘巷書院)에 제향(祭享)되었다.

≪청주대 교수 겸 청주학연구원 책임연구위원≫

황경수  hksu200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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