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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9>2020 설날을 맞으며
김영회 | 승인 2020.01.20 09:31

2020 설날을 맞으며

―기나긴 세월을 이어 온
민족의 큰 명절 설날.
핍박과 수난 속에서
이름조차 빼앗겼던
바로 ‘그날’입니다―

바야흐로 민족의 대 이동이 시작됐습니다. 25일 설날을 맞아 4일 연휴가 계속되니 온 나라가 온통 들떠 있습니다.

추석과 함께 우리 민족 양대 명절의 하나인 설날은 19세기 말 양력(陽曆)이 이 땅에 들어오지 않았던 시절, 한해를 시작하면서 만백성이 함께 즐기던 범국민적 축제였습니다.

설날의 유래는 멀리 신라시대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삼국유사’에 ‘신라 비처(毗處)왕 때(BC488년) 정월 초하룻날 설을 쇠었다’는 기록이 있는 것을 보면 설날은 기나긴 역사를 갖고 있음이 분명합니다. 그로부터 고려와 조선을 거쳐 전통문화로 정착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으니 설은 그 뿌리가 자그마치 1500년은 된 것이 아닌가 짐작됩니다.

설날은 한 해를 끝내고 다시 시작한다는 의미로 ‘설다’, ‘낯설다’, ‘삼가다’등 에서 그 이름이 유래한 것으로 한자로는 원단(元旦), 세수(歲首), 신일(愼日)등으로 불리기도 합니다.

설날 아침에는 온 가족이 한자리에 모여 조상에 차례를 지내고, 떡국을 먹고, 성묘(省墓)를 하고, 부모, 일가친척, 이웃 어른들에게 세배를 하고 세배 돈을 받는 것이 고유한 풍속입니다. 또 설빔이라 하여 새로 장만한 옷을 입고 남녀노소가 마당에 모여 윷놀이, 널뛰기, 연날리기, 제기차기 등 민속놀이를 하며 모두 함께 하루를 즐겼습니다.

하지만 그러한 민족의 명절 설날은 불행하게도 근·현대에 들어오면서 제 이름마저 빼앗긴 채 숱한 박해와 핍박을 당해 왔습니다. 고종황제 때인 1895년 음력 11월 17일을 양력 1896년 1월 1일로 역법(曆法)을 바꿔 사용하기 시작하면서 설날의 수난은 시작됩니다. 이때부터 음력은 구시대의 유물로 낙인 찍혀 양력 날자 밑의 보조 활자로 밀려 났고 양력 1월 1일은 신정(新正)으로, 음력 정월 초하루, 설날은 이름조차 구정(舊正)으로 격하되는 수모를 당해야 했습니다.

이는 일찍 서양문화를 받아들인 일본이 쓰는 양력을 따라 하는데서 생긴 호칭이었지만 수난은 1910년 한·일합방과 함께 일제의 조선 문화 말살정책으로 본격적인 탄압으로 바뀝니다. 일제(日帝)는 철저히 양력설을 강요했고 진짜 설날은 국민들이 쇠지 못하도록 막았습니다.

그런데 참으로 어이없는 건 일제로부터 독립이 되고 정부가 수립된 뒤에도 설에 대한 탄압은 40여년이나 계속됐다는 점입니다. 이승만 정부는 “음력설을 쇠는 것은 민족의 수치”라는 해괴한 논리로 이중과세(二重過歲) 금지를 내세워 1949년, 신정(新正)의 3일 연휴를 법제화하여 공무원들에게 양력설을 강요했고 박정희정부 또한 설날을 공휴일에서 아예 제외시켜 학생들을 등교시키는가 하면 공장도 쉬지 못하게 하는 압박을 가했습니다. 그 때문에 공직자들은 울며 겨자 먹기로 신정을 쇨 수밖에 없었고 국민들은 죄나 짓는 것처럼 눈치를 살피며 음력설을 쇠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1980년 5공 정권 들어와 지지기반이 취약했던 전두환 정부는 민심을 회유하기 위한 수단으로 1985년 ‘민속의 날’이라는 이름으로 설날 하루를 공휴일로 선포했고 1989년 노태우정부 들어와 비로소 ‘설날’이라는 제 이름을 되찾고 정식 공휴일로 지정되기에 이릅니다.

긴 세월 제 나라에서 이름마저 잃어 버렸던 설날은 온갖 박해와 고초 속에서도 끊질 긴 생명력으로 94년 만에 다시 정식 명절로 회생이 된 것입니다. 전두환, 노태우 두 전 대통령은 총칼로 정권을 탈취해 온갖 구설(口舌)을 들으며 옥고(獄苦)마저 치렀지만 1945년부터 37년 동안 국민들을 속박해 온 야간통행금지 철폐와 설을 복권시킨 그 공은 평가 받아야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야간통행금지란 1945년 일제가 물러가고 미군이 들어와 밤 시간에 일반의 통행을 금지시킨 것을 시작으로 1982년까지 국민에게 큰 고통을 주었던 아주 몹쓸 제도였습니다.

 명절을 맞아 고속도로를 가득 메운 귀성 차량들이 행렬을 이루고 있다. 사진은 지난 해 추석의 고속도로 모습. / Newspim

지금 전국의 고속도로, 국도, 지방도, 철도, 하늘 길, 바닷길 할 것 없이 차량과 인파로 홍수를 이루고 있습니다. 국민의 절반이 넘는 3000여만 명이 한꺼번에 귀성길에 나서고 있어 북새통을 이루고 있으니 가위 ‘민족의 대이동’이란 표현이 그럴 듯합니다.

온종일 공중을 날던 새들도 해가 지면 제 둥지를 찾아 들고 산과 들을 헤매던 짐승들도 제 굴로 돌아가듯, 인간들 역시 때가 되면 자신을 낳아 준 고향 산천 부모 형제, 혈육들을 찾아 가는 것은 동물적 본성인 ‘귀소본능(歸巢本能)’의 한 모습입니다.

지금 전국 곳곳 고향에는 오랜만에 만난 부모 형제, 자식들이 재회의 기쁨을 나누며 정담으로 꽃을 피우고 있습니다. 객지에서 고된 생활에 부대끼다 돌아 온 이들의 화기 넘치는 장면은 한편의 정겨운 드라마 ‘인간극장’의 줄거리, 그대로입니다. 본래 정에 약한 한국인들 아닙니까.

그런데 세월 따라 설날 풍습도 많이 바뀌었습니다. 참으로 아쉬운 것은 조상에 대한 효사상은 물론 웃어른에 대한 경로사상, 이웃사랑이 예전보다 많이 퇴색했다는 점입니다.

우리의 전통적인 명절의 의미는 조상을 기리고 경로효친의 정신으로 온 가족이 함께 화기애애하게 새해를 즐겁게 보낸다는데 본뜻이 있습니다.

지난 시절 설날이면 젊은이들은 물론 어린아이들까지 모두 온 동네 집집마다 어른들을 찾아 일일이 세배를 올리고 덕담을 들으며 떡국을 먹곤 하던 일이 이제는 옛날이야기가 되었습니다.

먹을 것이 모자라 사는 형편은 어려웠지만 그 때는 사회공동체로서 그것은 도리였고 미풍양속이었는데 이제 그런 풍경은 찾아 볼 수조차 없으니 시절의 무상함을 금할 수 없습니다.

벽 하나를 사이에 두고 이웃으로 살면서 왕래는커녕 옆집 사람이 누구인지, 이름조차 모르고 사는 오늘날 도시의 비정한 세태를 보노라면 개인주의에 이기주의까지 만연해 있음을 새삼 실감하게 됩니다.

지금 우리 사회에는 뜻깊은 명절을 맞고도 함께하지 못하는 이들도 많이 있습니다. 남들이 모두 고향을 향해 달려가건만 그렇지 못한 이들, 그들은 명절이면 오히려 더 외롭고 쓸쓸하기 마련입니다.

가야할 고향은 있으나 가지 못하는 이산가족들이 그렇고 경제사정이 어려워 귀성을 포기한 이들 또한 그렇습니다. 의지할 데 없는 노인들이 그렇고 보호시설의 부모 없는 어린이들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생활보호 대상인 극빈층의 설날은 또 어떻겠습니까.

회사가 어려워 밀린 임금조차 받지 못하는 노동자들, 이역만리 해외에서 온 외국인 노동자들 또한 가족이 그립기는 마찬가지 일 것입니다.

남북의 긴장은 완화됐다고는 하나 국토방위를 위해 설한풍 몰아치는 혹한의 전방고지에서, 해안초소에서 밤을 지키는 군 장병들, 그리고 국민의 안녕질서를 위해 고생하는 경찰관, 소방관들, 또 음지에서 근무하는 많은 공직자들이 모두 그러할 것입니다. 이들에게 설날은 오히려 더 힘든 날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마음으로 나마 그들에게 위로를 보내야 하겠습니다.

호사다마인가. 네팔에서 교육봉사중인 충남교육청 교사들 네 분이 안나푸르나에서 조난을 당했다는 비보가 날아 왔습니다. 당사자들의 가상한 봉사정신이 졸지에 가족들에게 슬픔이 되었습니다. 참으로 안타깝기 그지없습니다.

김영회  yhk93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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