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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2>아, 대한민국!
김영회 | 승인 2020.02.20 11:05

아, 대한민국!

―봉준호 감독은 말합니다.
“불안을 친구처럼 달고 살았다.
불안해서 불안하고, 불안하지
않아서 불안하다”고.
오늘 우리는 모두가 불안합니다―

입춘이 지나고 얼었던 대동강 물도 풀린다는 우수(雨水)에 때 아닌 폭설이 날리는 것을 보면서 시계처럼 어김없이 순환하는 계절도 때로는 제 길을 잃고 방황하는 것이 아닌 가 생각을 해 봅니다.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이 콧대 높은 아카데미 영화상의 4개 부문을 석권해 온 국민이 환호작약(歡呼雀躍)하는 사이 미처 기쁨을 만끽할 사이도 없이 원인도 알 수 없는 ‘코로나19’라는 괴질이 만연해 국민들을 온통 불안하게 하고 있습니다.

아닌 게 아니라 아카데미상이라면 한해 한 번 신문 방송을 통해서만 소식을 들었지, 우리 영화와는 인연이 없던 영화제였습니다. 칸(프랑스), 베를린(독일), 베니스(이탈리아) 등의 명망 있는 영화제에서는 그때마다 심심찮게 수상을 해 친근감마저 갖고 있는 터이지만 아카데미상이라면 미국 영화 92년 역사에 외국 영화에 상을 준 예가 없다하니 텃세도 대단한 텃세가 아니었던가 싶습니다.

그런 귀한 상을, 그것도 작품상에 감독상, 각본상, 국제영화상 등 무려 4개를 한꺼번에 휩쓸었으니 자랑을 좀 한들 과할 건 없을 듯합니다. 게다가 한국 영화 101년의 쾌거라는 또 하나의 기록마저 곁들였으니 미상불 우쭐 해 지는 기분을 금키 어렵습니다.

그런데 이번 ‘기생충’ 수상을 보면서 이런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문화의 힘이란 참으로 대단 하구나”하는 생각 말입니다. 온 국민을 하나로 똘똘 뭉치게 하는 힘을 보여주었으니 말입니다. 정치에서 그렇게도 애를 써도 되지 않는 국민 통합이란 명제가 영화 한 편으로 어렵잖게 실현 할 수 있기에 말입니다. ‘기생충’은 우리 국민을 하나로 묶은 계기를 만들었습니다.

우리 근·현대사를 돌아보면 민족·국민이 하나가 되게 하는 역사적인 사건들이 여러 번 있었긴 합니다. 그 동력은 이념도 아니었고, 지역도 아니었습니다. 있었다면 민족·국민의 공통된 열망, 함께 추구하는 하나의 목표, 민주주의 구현을 위한 희생을 마다 않는 헌신이 에너지가 됐습니다.

*1919년 3·1독립만세운동이 그랬고 *1945년 일제식민지로부터의 해방, *1960년 4·19국민혁명, *1987년 6월항쟁, *2002년 한일월드컵, *2016년 박근혜대통령 탄핵 촛불혁명 등이 그 사건들입니다.

1910년 8월 29일의 한일병합의 무효와 독립을 요구하는 서울 탑골공원 집회로 촉발된 3·1만세운동은 3월 1일 서울에서 시작돼 5월 31일까지 3개월 동안 전국 팔도로 번져나가 뜨겁게 불타올랐습니다.

박은식의 ‘한국독립운동지혈사’에 의하면 시위운동에 참여한 인원은 약 200만 명이며 경찰의 강제 진압으로 7,000명의 사망자를 냈으며 부상 4만5,000명, 체포 4만9,000명의 피해를 입었습니다. 3·1운동은 모두가 하나가 된 순수한 민족 운동이었습니다. 극소수의 친일파들이 있었지만 거의 대다수의 국민들은 한 목소리로 독립만세를 외쳤습니다. 3·1만세운동에는 이념도 없었고 지역도 없었고 혈연도 없이 오직 하나, 하나의 민족만이 있었습니다.

1945년 8월 15일 낮 12시 일본의 쇼와천황(昭和天皇)은 공영방송 NHK를 통해 “일본제국은 무조건적인 항복을 선언합니다”라고 떨리는 목소리로 방송을 합니다. 이는 곧 6년 동안 계속된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났음을 알리는 신호인 동시 일본제국의 식민지로 35년 14일 동안 고초를 당했던 한국의 해방을 뜻하는 것이기도 했습니다.

이 극적인 소식은 2,500만 한국인에게 몽매에도 그리던 꿈만 같던 희소식이었습니다. 이날 조선 팔도는 지역이 따로 없었고, 이념도 따로 없었고, 오직 해방이라는 감격 속에 ‘하나의 민족’만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우리 역사의 두 번째 하나가 된 사건입니다.

1960년 ‘4월혁명’은 우리 역사상 최초로 권력자를 권좌에서 끌어 내린 최초의 혁명이었습니다. 자유당 정권의 3·15 부정선거로 촉발된 4월 혁명은 평소에는 아무런 힘도 없어 보이던 국민들이지만 한번 일어나면 어떤 결과를 보여주는지를 일러준 기념비적인 대 사건이었습니다. 이때 경찰의 총격으로 목숨을 잃은 젊은이가 무려 186명이나 됐습니다. 지금 저 서울 수유리 민주 묘지에 묻혀있는 이들이 바로 그들입니다. 이념도 없었고, 지역도 없는 오직 하나, 국민만이 있었던 4월이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숙 여사가 20일 청와대 본관에서 열린 아카데미 영화상 4관왕에 빛나는 ‘기생충’ 봉준호 감독을 비롯한 제작진 및 출연진 격려 오찬을 하기 전 환담을 하고 있다./NEWSIS

1987년 6월 서울 광화문에는 100만 시민이 거리를 메웠습니다. 전두환 군사 정권에 항의하는 시민들이었습니다. 그날 시위에는 소위 넥타이를 맨 젊은이들이 대다수였습니다. 직장에 출근한 샐러리맨들이 모두 시위에 나선 것입니다. 거리의 상인들이 물을 퍼 나르며 시위에 합세했습니다. 결국 전두환 대통령은 대통령 선거의 직선제를 천명했고 시민들은 정치적인 승리를 쟁취했습니다. 당연히 이때도 이념이니, 지역이니 그런 편 가르기 없이 민주화를 위해 하나로 뭉쳤습니다.

2002년 한·일 월드컵에서 또 한 번 거국적인 국민운동이 벌어졌습니다. 누가 주도하거나 시킨 것도 아니었지만 축구를 통해 전 국민이 하나가 된 역대 급 사건이었습니다. 5월 31일부터 1개월 동안 전 세계 32개국 선수들이 불꽃 튀는 열전을 벌인 대회는 총 270만 명이 관전을 했으며 대한민국은 포르투갈, 이탈리아, 스페인을 꺾는 파란을 일으키며 4강에 올랐습니다. 그날 밤 서울 시내 거리는 경적과 음악소리와 함성으로 뒤 덮는 일대 장관을 연출했습니다. 그때 전국에는 이념 다툼도, 지역 대결도 없는 하나의 나라, “아, 대한민국!”만이 있을 뿐이었습니다.

2016년 10월부터 이듬해 4월까지 7개월 동안 진행된 박근혜 대통령 퇴진 촛불 시위는 연 인원 1,700만 명이라는 국민이 참여한 역대 급 집회였습니다. 결국 박근혜 대통령은 국정 파탄 책임으로 탄핵을 당했고 영어(囹圄)의 몸이 되었습니다. “군주는 배이고, 백성은 물이다. 물은 배를 띄우기도 하지만 뒤엎기도 한다”는 중국의 고사가 현실이 된 것을 보여 준 역사의 한 장면이었습니다.

영화 ‘기생충’은 극빈층 가장 기택(송강호)네 가족과 부유층 박사장(이선균)네를 대비해 양극화를 다루면서 사기행각을 벌이는 범죄와 공포물을 버무린 ‘블랙코미디’입니다. 이 영화가 전 세계의 이목을 집중 시킨 것은 우리 한국이나 서구 선진국이나 빈부 격차에서 파생되는 부조리는 다르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기 때문일 것입니다.

영화 속에서 아들 기우(최우식)의 물음에 아버지 기택은 말합니다. “계획? 없어. 무계획이 계획이야. 인생에서 계획한다고 되는 게 있어? 그러니까 계획이 없는 게 있는 것이지.” 우리 사회 서민들의 무력한 현실을 대변해 주는 매우 공감 가는 명대사입니다.

그런데, 영화 기생충이 그 어려운 4개의 아카데미상을 받았다고 해서 현실에서 뭐, 달라지는 것이 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바로 그것이 아쉬움입니다.

“불안해서 불안하고, 불안하지 않아서 불안하다”는 봉준호 감독의 말마따나 지금 한국 사회는 불안 속에 살고 있습니다. 대 저택에 사는 박사장(이선균)과 그의 아내(조여정)는 그들대로 불안에 쫓기고 남의 저택에 쳐들어가 한때나마 내 집처럼 양주 파티를 벌이는 기택일가는 그들대로 상영 시간 내내 관객들을 조마조마하게, 불안하게 만듭니다.

지금 우리 사회는 모두가 불안, 불안 속에서 살고 있는 것이 이 영화의 가려진 진실입니다. 반 지하에 살고 있는 수많은 서민들, 아니 그 보다도 못한 더 불행한 사람들에게 이 영화는 어떤 메시지를 주고 있는 것일까? 오늘 그것이 궁금합니다.

김영회  yhk93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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