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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년회 有感<오늘을 생각하며>
김영회 | 승인 2015.12.14 11:21

망년회 유감

 

이제 세시풍속이 된 망년회,
술에 취해 추태를 보이기보다
지난해를 반추하며 되돌아보고
새로운 한해를 함께 다짐하는

차분한 모임이 돼야 하겠다

 

어물어물 하다 보니 어느새 한해의 마지막 달 12월에 와 있습니다. 이제 20여일 뒤면 2015년을 마감하고 새로운 또 한해 2016년을 맞게 됩니다.

해마다 이맘때면 느끼는 일이지만 올해도 떨치지 못하는 것은 “세월이 참으로 덧없이  흐르는구나” 하는 생각을 떠올리는 일입니다. 1970년대 정희성시인은 그의 시 ‘저문강에 삽을 씻고’의 첫 구절을 ‘흐르는 것이 물뿐이랴’라고 읊었는데 세월 또한 그렇게 물처럼 흐르는 것이 아닌가, 여겨집니다.

 그 옛날 산을 뽑고 천하를 뒤덮는 역발산(力拔山) 기개세(氣蓋世)의 힘을 가진 그 누구인들 어찌 오는 시간을 막을 수 있으며 가는 세월을 잡을 수 있겠는가, 부질없는 상념에 젖게 됩니다.

이제 연말이 되니 여기저기서 한해를 정리하는 망년모임들이 시작되고 있습니다. 한 해가 가는 것을 아쉬워하며 각종 단체, 직장의 동료, 가족, 친지들이 한자리에 모여 서로의 노고를 위로하고 격려하는 정겨운 모습은 삭막한 우리사회의 아름다운 풍속도입니다.

망년회(忘年會)라는 말은 원래 일본에서 건너 온 용어입니다. 일본에서는 이미 1400여 년 전부터 12월이 되면 평소 가까이 지내는 이들이 한자리에 모여 “지난 한해의 괴로웠던 일, 슬펐던 일들을 모두 잊어버리자”는 뜻으로 회식을 하는 풍습이 있었는데 그를 가리켜 ‘보우넹카이’라고 했고 그것이 오늘 날 망년회의 유래가 된 것으로 전해집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조선시대 음력 섣달그믐 날인 12월 30일 밤을 수세(守歲)라 하여 마루, 부엌, 외양간, 심지어 측간(厠間・화장실)에 까지 호롱불을 켜놓고 부엌을 관장하는 신(神)인 조왕신(竈王神)을 기다리며 밤을 세우는 관습이 있었습니다.

이때 만약 잠을 자면 눈썹이 하얗게 쉰다는 속설을 믿고 모두 함께 날밤을 새웠는데 잠이 든 아이들 눈썹에 흰 밀가루를 묻히곤 했다고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에는 적혀 있습니다.

그러고 보면 현재 우리 사회의 망년회는 식민지시대 일본에서 건너 온 것이 분명해 보이고 1960년대 산업화 이후 세시풍속으로 일반화 된 것이 아닌가 짐작됩니다. 사연이 그렇다 보니 한때 망년회라는 용어자체를 일제잔재(日帝殘滓)라 하여 시비가 일었고 그 이후 송년회라는 이름으로 바꿔 부르고 있습니다.

또 어떤 이들은 망년회라는 명칭에 대해  중국의 옛글 망년지교(忘年之交)에서 그 연원(淵源)을 찾는 이가 있지만 그것은 ‘늙은 사람이 나이를 잊고 훌륭한 젊은 사람과 두루 사귄다’는 뜻이지 한해를 잊는다는 망년회와는 그 의미가 전혀 다른 것입니다.

어쨌거나 이미 여기 저기 골목들 음식점에는 삼삼오오 손님들이 줄을 잇기 시작해 세모(歲暮)가 가까워 졌음을 알리고 있고 망년회 특수를 기대하는 업주들의 얼굴에는 회심의 미소마저 감돌고 있습니다.

한 해 동안 일상에 찌들러 온 사회구성원들이 음식과 술을 들면서 서로를 위로하고 덕담을 나누는 정경은 상상만으로도 즐겁지 않을 수 없습니다. 더 더욱 그런 모임을 통해 쌓인 스트레스를 털어 내고 새로운 에너지를 충전해 새해를 맞이한다면 망년회 회식이야말로 꼭 필요한 활성제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동안 우리 사회에 뿌리 내린 망년회 문화는 꼭 그렇지 만은 않다는데 아쉬움이 있다고 하겠습니다. 일 년 365일을 하루같이 그날그날 힘겹게 지나 온 사회분위기 속에서 차분히 지난 한해를 되돌아보고 새해를 준비한다면 오죽이나 좋을까 마는 그렇지 않고 단지 취하기 위해 술로 시작해서 술로 끝을 맺는 ‘술판망년회’가 되고 있으니 아무래도 망년회 본래의 취지와는 거리가 멀지 않나 싶습니다.

이방 저 방에서 마치 경쟁하듯 목청을 높여 외치는 “위하여! 위하여!” 우렁찬 소리는 모르면 모르되 한국에만 있는 진기한 풍경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것도 모자라 2차, 3차로 자리를 옮겨 가고 노래방, 유흥주점으로 이어져 결국에는 즐거움이 지나쳐 시비가 일고 끝내는 추태를 보이는 경우도 비일비재(非一非再)하니 이런 왁자지껄한 망년회야 말로 또 하나의 폐습이라 아니 할 수 없습니다.

우리나라의 잘못된 음주문화는 이미 어제 오늘의 이야기는 아닙니다. 개화기 한국에 온 한 서양인 선교사는 한국인들의 술 문화를 보고 크게 놀랐다고 견문록에 적고 있습니다. “술자리에서는 어김없이 큰소리로 떠들고 억지로 술을 권하는가 하면 아침이 되면 술꾼이 토해 놓은 토사물로 냄새가 진동하고 거리 곳곳에 주정뱅이들이 들어 누워있다”며 “평소에는 그렇게 선량한  사람들이 술만 마시면 개가 된다”고  썼을 정도입니다. 선교사들이 신도들에게 술을 금지 시킨 것 도 “조선민족은 술 때문에 망할 민족”이라고 한탄하고 내린 결정이라는 설도 있습니다.

술잔을 함께 들고 우렁차게 “위하여!”를 외치는 한국적 망년회. 시류에 맞는 새로운 망년회 문화가 필요합니다. /뉴시스

비뚤어진 음주문화의 폐습이 사회문제화 되자 심각성을 인식한 일부 대기업 중에는 무분별한 망년회의 악습을 바꾸기 위한 일환으로 캠페인을 벌이는 곳이 늘어나고 있다고 합니다.

예컨대 굴지의 한 기업은 벌주(罰酒)와 원 샷(One-Shot)강요,  사발주(沙鉢酒)를 3대 음주악습으로 규정하고 이를 금하는 절주캠페인을 펴면서 ‘119’, 즉 ‘한 가지 술로  한자리에서 9시에 끝내는 절주운동’을 펴고 있다는 것입니다.

또 다른 대기업에서는 ‘222캠페인’이라 하여 ‘잔은 2분의 1만 채우고, 건배제의도 2번 만, 2시간 이내 회식종료’라는 룰을 시행 중이라고 합니다. 또 몇몇 기업은 ‘문화송년회’의 일환으로 구성원들이 함께 봉사활동을 하거나 영화, 연극관람으로 대신하는가 하면 스포츠 행사를 하는 회사도 있다고 합니다.

오죽이나 음주문화의 폐해가 크면 이런 캠페인까지 벌이고 있을까, ‘해외토픽’란을 장식할 음주문화에 쓴 웃음마저 금치 못하게 합니다.

물론 술이 나쁘다고만 할 수는 없습니다. ‘한잔 술이 능히 만고의 시름을 씻는다(一盞能消萬古愁)’는 옛 시구(詩句)도 있듯 술은 적당히만 마신다면 풍진세상(風塵世上)을 사는 현대인들에게 윤활유가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술 몇 잔에 한해의 쌓인 시름을 몽땅 잊을 수 있는 것은 결코 아닌 것입니다.

옳든 그르든 이제 망년회는 우리 사회의 세시풍속으로 자리를 잡았습니다. 그렇다면 과소비가 없는 건전한 모임, 대화를 나누는 차분한분위기, 도를 넘지 않는 가벼운 음주 등 새로운 패턴의 망년회문화를 정립(定立)하면 좋겠습니다.

문화란 동시대(同時代)를 사는 대중들이 함께 향유(享有)하는 것일 터 인즉, 시대 조류에 맞는 그런 ‘망년회 문화’ 말입니다.

한 해를 보내는 것이 아쉽지만 즐거워야 할 망년회가 술로 망치는 '망주회(亡酒會)'가 되어서는 안되겠습니다.

김영회  yhk93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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