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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월함과 민주주의의 숭배자가 최후에 붙잡은 것은?밀의 ≪대의정부론≫ 읽기 (4)
최용현 | 승인 2016.02.29 09:08

밀(John Stuart Mill, 1806∼1873)의 시작은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적입니다. 그에게 정치의 근본 목적은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와 마찬가지로 모든 시민들의 지적․윤리적 탁월함을 증진시키는데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처럼 밀도 그러한 정신적 탁월성을 생산할 수 있도록 정치제도가 주조․재편되고, 그러한 탁월성으로 시민들이 지도되고 강제되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그들은 정신적 능력에 따라 정치적 지위와 권리를 차등 배분하는 ‘탁월성 원칙’은 오직 정신적 능력(타고난 지적 능력과 후천적인 학업․훈련에 따른 지적 성취)만을 기준으로 정치적 자원과 가치를 배분하므로 정치의 근본 목적에도 부합하고, 신분과 계급의 고하(高下), 소유와 재산의 과다를 불문하므로 모두에게 공평하고 공정한 정치원칙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라파엘로의 <아테네 학당>에 등장하는 플라톤(왼쪽)과 아리스토텔레스, 이들은 정신적 탁월성에 따라 정치적 자원과 가치를 배분하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라고 주장하였다.

“탁월성은 모두에게 공평하고 공정한 정치원칙”

그러나 정신적 탁월성이란 현실에서 정의하고 측정하고 비교하기가 어렵습니다. 현실에서 정신적으로 탁월하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 어떠한 경우에 똑똑하고 사려 깊고 책임감이 있다고 할 것인지, 누가 더 똑똑하고 더 사려 깊고 더 책임감이 강하다고 할 때 그 기준은 무엇인지, 똑똑함․사려 깊음․책임감 등 여러 정신적 덕목 중 어느 것을 우선하여야 하는지에 대하여 모두가 수긍하는 공통된 대답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러하기에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는 정신적 탁월성의 현실적 증표로 계급과 재산을 채택하고 신분과 계급, 소유와 재산의 정도를 기준으로 정치적 차등과 위계를 구축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즉 그들은 이상 정치에서는 탁월성 원칙을, 현실 정치에서는 계급과 재산의 정도에 따라 정치적 지위와 권리를 차등 배분하는 ‘계급․재산 원칙’을 따랐던 것입니다.

그러나 밀은 현실 정치도 이상적 정치 원칙인 탁월성 원칙을 따라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그러한 점에서 그는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보다 더 탁월성 원칙에 집착하고 있습니다. 그는 정치에서 계급․재산 원칙은 아무런 정당성도 갖지 못한 것이고 더 큰 해악을 초래할 뿐이라며 거부하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미리 분명히 강조할 것이 있다. 임시변통이라면 모를까 재산이 많다고 더 큰 영향력을 주는 것은 안된다……행여 재산을 기준으로 복수 투표를 시행하는 것은 그 자체로 용납될 수 없는 일일뿐만 아니라, 이 원리의 정당성을 훼손하면서 제도적으로 안정되게 운용되는 것을 불가능하게 만든다……어떤 사람에게 1표 이상의 투표권을 주는 것을 정당화하는 유일한 근거는 정신 능력이 탁월한 경우이다

그렇다면 탁월성의 정의․측정․비교 곤란의 문제를 그는 어떻게 해결할까요? 나아가 현실 정치에서 어떻게 탁월성 원칙을 실현할 수 있을까요?

밀은 그 방법으로 사람들의 정신적 능력을 평가하는 국가검정시험을 실시하고, 정신적 능력이 갖추지 못한 사람들의 투표권은 박탈하거나 유예하고, 그 능력이 다소 부족한 사람들에게는 투표권을 부여하되 그들이 제대로 투표권을 행사하는지 감시하고, 정신적 능력이 높다고 인정받은 사람들에게는 더 많은 투표권을 부여하고, 탁월한 정신적 능력을 가진 사람들만 높은 고위직이 될 수 있도록 하는 제도 등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똑똑한 사람이 더 많은 투표권을 가져야 하고 더 높은 자리에 올라야 한다는 것은, 귀족신분을 타고 났다거나 재산을 많이 보유하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더 많은 투표권을 갖고 더 높은 자리에 올라야 한다는 것보다는 공평․공정하고 설득력이 있어 보이는 것은 맞습니다. 그러나 탁월성 원칙은 비록 계급․재산원칙 보다는 공평․공정하더라도, 모든 시민이 그 계급․재산적 차이는 물론 지적․윤리적 차이에도 불구하고 동등하게 선거․피선거권을 가져야 한다는 민주주의의 ’평등 원칙‘에는 명백히 반하는 불공평하고 불공정한 원칙일 뿐입니다.

똑똑한 사람들은 그들 마음대로 하도록 냅둬라!

밀의 탁월성 원칙의 현실적 실현 방법이라는 것은, 민주주의의 ‘대표’ 원리를 수정․왜곡하여 똑똑한 사람들이 보다 많이 대표자가 되도록 조작․기만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밀은 이러한 민주적 대표 원리의 왜곡과 조작만으로는 정치에서의 탁월함을 달성하기에 부족하다고 느꼈습니다.

그는 왜곡되고 조작된 대표 원리에 따라 선출․임명된 똑똑한 사람들이, 무지한 시민들의 관여와 추궁에게서 벗어나 오직 그들 자신의 능력과 판단에 따라 일을 처리하도록 최대한의 권한과 재량을 부여하여야만 정치에서의 탁월성을 제대로 달성할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즉 시민은 그들의 대표인 의원의 판단과 행위에 되도록 간섭하지 않고, 의원은 시민들의 속박에서 벗어나 스스로의 독자적 판단에 따라 행동하고, 시민의 대표기관인 의회도 행정과 사법의 전문가인 관료들의 판단과 행위에 되도록 간섭하지 않아야 하며, 그래야만 시민들보다 월등히 탁월한 의원과 관료들이 오직 자신들의 전문가적 지식과 공적 사명감에 따라 무엇이 시민과 공공에 이익이고 무엇이 정의롭고 바람직한가 제대로 판단하고 처신할 수 있으며, 그럴 때 모든 시민과 공동체를 위한 보다 바람직하고 훌륭한 결과를 낳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밀의 주장은, 현대적 용어로 말하면 민주주의의 수직적․수평적 ‘책임’ 원리를 현저히 약화시키자는 것입니다.

이 책에서 정부가 갖추어야 할 두 가지 요건의 중요성에 대해 시종일관 강조하고 있다. 그 하나는 정치권력이 이득을 주어야 하고, 또 늘 그렇게 이득을 주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에 대해 책임을 지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특정 임무를 수행하는데 적합하게 오랜 숙고를 거듭했고 구체적인 업무 능력까지 갖춘 뛰어난 지능의 소유자를 잘 활용하는 것이다. 정부가 기능을 잘 하기 위해서는 그런 사람의 도움을 많이 받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 둘째 요건이 그럴 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된다면, 그에 상응하는 비용을 지불하는 것이 불가피할 것이다……어느 모로 보나 지적인 측면에서 일반 유권자보다 뛰어난 사람을 뽑는 것이 대의제가 존재하는 이유이다. 그렇다면 대표가 다수 유권자들과 달리 생각하는 일이 가끔 생길 것이고, 이럴 경우 대표의 주장이 대부분 맞을 것이라고 간주해야 마땅하다. 따라서 유권자들이 대표의 지위를 유지해주는 조건으로 자신들의 생각을 그대로 따를 것을 요구한다면 결코 현명한 처사라고 할 수 없다.

역사적으로 업무처리에서 높은 수준의 정신적 능력과 뛰어난 활동력을 과시했던 정부는 대부분 귀족 중심으로 운영되었다. 그러나 이들 정부는 하나도 예외 없이 전문적인 공무원들에 의해 지배되는 귀족중심체제였다……결국 대의제가 아닌 군주제나 귀족제 아래에서 높은 수준의 정치적 역량과 기술을 꾸준히 발휘할 수 있었다면 그것은 기본적으로 관료제의 덕분이었다……전문적인 훈련을 받은 관리들이 탁월한 능력을 발휘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들도 자유로운 정부가 할 수 있는 일을 따라하지 못할 때가 있다. 거꾸로 자유 정부가 할 수 없는 일을 이들이 해내는 경우도 있다……이 둘 사이에 모순과 충돌이 일어나서는 안된다. 인민의 자기결정권이라는 큰 전제와 양립할 수 있는 한계 안에서 전문가의 역할을 최대한 늘리자는 것이다……대의기구의 기능을 이처럼 합리적 한계 안에서 억제해야만 한편으로 민주적 통제, 다른 한편으로 숙련된 입법과 행정이라고 하는 그에 못지않게 중요한 목표(사실 인간 사회가 점점 더 복잡해지고 그 규모도 커지면서 이런 일의 중요성이 한층 더 증대되고 있다)를 함께 달성할 수가 있는 것이다. 이 두 가지 측면이 주는 혜택을 충분히 누리자면 각각의 기능을 분리하는 것 외에는 대안이 없다. 즉 통제와 비판을 담당하는 부서를 실제 업무를 추진하는 기관으로부터 떼어놓아야 한다. 앞의 일은 다수 국민을 대표하는 기구에 맡기고, 뒤의 일은 국민에 대해 엄격하게 책임을 지는 조건으로 전문 지식을 갖추고 특수 훈련을 거친 소수의 경험자에게 위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공교롭게도 밀은 토크빌과 마찬가지로, 민주정체에서의 ‘사법부’의 지위와 역할을 극찬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놀랍게도 토크빌과 마찬가지로 사법부 구성에서의 反민주적 성격과 정치의 민주적 경향을 제어․통제 하고자 하는 사법 관료들의 귀족적․보수적 심성과 역할 때문이었습니다.

밀의 <<대의정부론>>.

관료의 발견!

여기서 밀은 이전의 정치의 세계에서 존재하지 않았던 혹은 이전의 정치사상가들이 전혀 관심을 갖지 않았던 새로운 집단에 주목합니다. 바로 ‘관료’입니다.

밀은 행정․사법 관료들의 효율성, 전문성, 공동체와 공적 이익에의 충성심 등을 높이 평가하고, 이들의 이러한 역량은 민주정체의 예상되는 무지와 졸속에 대한 훌륭한 보완책이 될 것이라고 보고, 민주주의가 이러한 관료주의․엘리트주의․전문가주의와 적정히 조화를 이룰 때 자신이 상정하는 최상의 정체인 ‘숙련(skilled) 민주주의’가 가능하다고 말합니다.

고대 아테네인들은 직업적 관료의 존재를 알지 못하였습니다. 그들은 행정․사법기구의 구성원들을 평범한 시민들로, 그것도 추첨을 통하여 충원하였습니다. 근대적 의미의 관료기구가 등장한 것은 절대주의 시대부터입니다. 그러나 그 당시만 해도 관료의 규모는 그다지 크지 않았고, 전적으로 국왕의 사유물에 불과하였습니다. 이후 국민국가가 성립하고 국가의 권한과 기능이 커지면서, 관료는 국왕의 사유물이라는 이미지를 점점 벗었고, 관료의 규모와 기능도 점점 확대되어만 갔습니다.

이러한 관료의 등장과 성장을 대변한 대표적 정치사상가가 바로, 지금 보는 밀과 그보다 한 세대 전의 독일 철학자인 헤겔(Georg Wilhelm Friedrich Hegel, 1770∼1831)입니다. 밀과 헤겔이 관료에 대하여 주목한 것은 그들의 非세습․沒계급적인 출신 성분, 오랜 학습과 경험을 통한 유능함과 전문성, 공적 업무 수행에 따른 불편부당성과 공익 추구 경향 등입니다.

지독한 관념론자였던 헤겔은 관료의 이러한 특성에 초점을 맞추어 그들을 국가이성의 체현자인 군주를 보좌하며 시민사회의 특수한 이익들을 조정하고 공동의 이익을 실현하는 '보편 계급(universal class)‘이라고까지 드높이고 있습니다. 밀도 이러한 특성에서 매료되어 관료 집단을 지적․윤리적 탁월성의 현실적․현대적 구현자라고 생각했는지도 모릅니다.

관료는 보편계급 혹은 탁월성의 구현자일까

이러한 밀의 관료에 대한 평가(非계급성과 非당파성, 유능함과 전문성, 공익 추구성 등)는 얼마나 객관적으로 타당한 것일까요? 그의 평가는 시대적 한계를 넘어 현대 사회에서도 적정한 것일까요?

관료들이란 원초적으로 그리고 후천적으로 사회경제적 지배계급과 물리적 친화성을 가질 수밖에 없습니다. 관료가 되기 위하여 필요한 지식과 승진에서 필요한 실적이란 사실상 사회적 학습과 친교의 함수이고, 그러한 학습과 친교는 사회경제적 지위와 부의 결과이거나 이와 병행하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또한 (비록 ‘국가는 부르주아 계급의 집행위원회에 불과하다’는 마르크스의 말이 전적으로 진실은 아닐지라도) 적어도 ‘계급입법은 모든 정체의 본질적 경향’이라는 밀 스스로의 말에 의하더라도, 국가란 기본적으로 사회경제적 지배계급의 의지와 이익에 따라 움직이고, 그 국가에 인격적 구성자인 관료는 사회경제적 지배계급에 정신적으로 종속될 수밖에 없습니다.

밀이 전제하는 관료의 유능함과 전문성도 과장되었거나 적어도 시대적 한계를 갖는 것입니다. 시민사회가 충분히 조직화 되지 못하고 발전하지 않았던 밀의 생존 당시를 기준으로 보면, 국가 관료 기구는 가장 유능하고 전문성을 갖춘 집단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시민사회가 국가 기구 이상으로 성장한 현대 사회에 들어서는 국가 관료 기구는 오히려 무능, 전문성 결여, 복지부동, 무사안일, 줄서기, 부정부패, 무책임 등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나아가 밀이 주장하는 관료들의 공익 추구 본성도 과장되거나 왜곡된 것일 수 있습니다. 현대의 많은 연구에 의하여 증명된 것은, 관료들이란 공익을 명분으로 내세우고 있지만 실제로는 자신들의 조직적․제도적․집단적 이익을 유지하고 확대하는데 더욱 집착한다는 것입니다. 실제 노무현 정권에서 보았듯이 민주적 개혁에 가장 조직적․효과적으로 저항하여 민주주의를 좌절시킨 세력이 바로 보수적인 행정․사법 관료들이었습니다.

관료 집단은 밀이 생각하는 것만큼 선천적․후천적으로도 그리고 물리적․정신적으로도 전혀 非계급적이지도 불편부당하지도 않습니다. 또한 그들은 시민 전체와 공동체의 이익만을 추구하지도 않습니다. 그들이 그러한 이익을 추구할 때는 그것이 우연히 자신들의 개인적․조직적․제도적 이익과 동일할 때 뿐입니다. 또한 적어도 현대에 이르러서는 그들은 유능과 전문성의 상징이라기 보다는 무능과 구태의연함의 상징이라는 것이 보다 진실에 가깝습니다.

소유와 탁월성, 2천5백년간 정치사상가들의 주제

플라톤의 ≪국가≫에서부터 밀의 ≪대의정부론≫에 이르기까지 모든 정치고전에 공통적으로 등장하는 두 가지 주제는, ‘소유’(혹은 재산, 계급)와 ‘탁월성’입니다. 그 이후에도 소유는 정치사상의 중심 주제였지만, 탁월성을 주요 주제로 다룬 정치사상가는 밀이 마지막입니다.

모든 정치사상가들은, 정치적 대립과 분쟁의 근원에는 소유․재산의 유무와 그것을 둘러싼 계급 갈등이 있다고 합니다. 그들은 어떤 나라나 사회든지 기본적으로 소유와 재산의 유무과다에 따라 다수의 가난한 사람과 소수의 부유한 사람으로 나누어지고, 이 두 계급간(또는 이 두 계급을 대변한 정치세력간)의 대립이 모든 정치적 분쟁의 기초가 되고, 그러한 대립을 어떻게 조화시키고 해소하느냐에 따라 공동체의 성패가 결정된다고 주장합니다.

이에 대하여 그때까지 정치사상가들이 제시하는 가장 보편적인 대답은 이미 아리스토텔레스에 의하여 내려졌습니다. 정치를 정신적인 ‘탁월성’에 따라 재구성하거나 혹은 현실적인 ‘계급과 재산’에 따라 재구성하자(또는 양자를 병행시키자)는 것입니다. 이상주의자로서의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모어의 유토피아․정치사상가로서의 토크빌․밀이 전자를 더 따랐다면, 현실주의자로서의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마키아벨리․로크․몽테스키외․시에예스․페더럴리스트 페이퍼의 저자들․정치인으로서의 토크빌은 후자를 더 따랐다고 할 것입니다.

정신적 탁월성에 따라 정치를 재구성하자는 탁월성 원칙이란, 최상위 지적 엘리트인 정치사상가들의 ‘신분적’ 욕망에서 비롯된 것일 수도 있습니다. 철학자가 왕이 되어야 한다거나 왕이 철학자로부터 배워야 한다고 주장한 플라톤은 당대 최고의 철학자였습니다. 가장 똑똑한 사람이 대표자가 되어야 하고 관료는 가장 똑똑하고 공평무사한 집단이라고 주장한 밀은 당대 최고의 지식인이었고 30여년 넘게 동인도회사에서 관료생활을 한 인물이었습니다.

일견 탁월성의 원칙은 계급․재산 원칙과는 대립적인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사실 양자는 대립적이지만은 않고, 양자 사이의 간격도 그리 멀지 않습니다. 정신적 탁월성이란 사실상 사회적 지위와 부에 따른 교육과 친교의 결과물일 뿐입니다. 그러하기에 현실주의자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마키아벨리․로크․몽테스키외․시에예스․페더럴리스트 페이퍼의 저자들․정치인으로서의 토크빌은 계급과 재산이 탁월성의 현실적 대체물이라고 전제하였던 것입니다.

근대 영국 의회의 모습, 19세기 중반에 이르기까지 가장 선진적이었던 영국도 선거, 피선거권이 신분과 재산에 따라 제약되었다.

밀의 탁월성, 그 이면의 계급성과 反민주성

역사적으로 탁월성 원칙은 계급․재산 원칙에 따른 지배를 교묘히 감추는 이데올로기적 역할을 충분히 수행하였습니다. 눈치 빠른 정치인들은 “나는 부자니까 대표자가 되어야 한다”거나 “나는 토지주이며 노예소유주이니 고위직을 맡아야 한다”고 결코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항상 훌륭한 교육․전문가적 식견․경험을 통한 사려 깊음․윤리적 책임감․공동체에 대한 충성심 등을 갖추었기에, 자신들이 대표자나 고위공직자가 될 수 있다고 말합니다. 그들의 내세우는 언어는 항상 정치사상가들의 고상한 언어, 바로 지적․윤리적 탁월함입니다.

만약에 정치가 ‘날 것 그대로’의 계급․재산적 본성을 드러낸다면, 그 정치는 오래 존속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정치적 기예의 진수는 그 계급․재산적 본성을 어떻게 교묘하게 감추느냐에 있고, 2,500여 년간 정치사상가들이 줄기차게 주장해온 탁월성의 원칙은 그것을 위한 최고의 수단이었던 것입니다.

밀은 당대의 현실적 정치원리였던 反민주적인 계급․재산 원칙(밀의 당대만 해도 특정한 신분을 갖추거나 상당한 토지를 보유하거나 상당한 세금을 납부하는 자만 선거권을 갖고 있었습니다)을 비난하고, 민주적 평등 원칙을 찬양하고 그 안에서 탁월성 원칙을 도모하고 있습니다. 밀은 고대의 어느 정치사상가보다도 탁월성에 집착하였고, 당대의 어느 정치사상가․정치인보다도 민주적 신념을 고수하였습니다.

그런 밀에게도 탁월성 원칙은 사실상 계급․재산 원칙에 따른 지배를 감추기 위한 이데올로기에 불과했던 것이 아닐까요? 그런 밀에게도 민주적 신념은 언제라도 버릴 수 있는 위선(僞善)에 불과했던 것은 아닐까요?

오늘날 지적 수준이 아니라 생활 능력(재산 능력을 의미)에 따라 예외적 특권이 부여되고 있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지금 시행되고 있는 것을 폐지할 필요는 없다. 장차 보다 확실하게 교육 수준을 측정하는 방법이 도입되기 전까지는 경제적 여건에 의해 좌우되는 아주 불충분한 제도라고 하더라도 그대로 유지하는 것이 더 현명한 일이기 때문이다……교육과 같은 요소에다 그 탁월한 영향력에 상응하는 가중치를 줌으로써 교육 수준이 아주 낮은 사람들이 수적 우위를 독점하는 폐단을 시정할 수 있게 복수투표제가 고안되고, 또 사람들이 그것을 받아들여야 한다. 이것이 이루어지기 전에는 완전 평등한 보통선거제가 긍정적이기 보다 부정적인 결과를 더 많이 빚어낼 것이다.

그는 탁월성의 원칙을 달성하지 못한다면, 민주적 평등 원칙마저 과감히 포기해야 하며 오히려 당대의 反민주적인 계급․재산 원칙을 따르는 것이 보다 현명한 선택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가 마지막에 붙잡은 것은 자신이 고수하던 탁월함의 지배도 자신이 찬양하던 민주주의도 아닌, 바로 계급과 재산의 지배였습니다.

최용현  choiyh68@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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